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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남기고/ 美 LA한인 최고령자 103세 김명한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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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남기고/ 美 LA한인 최고령자 103세 김명한씨 별세

입력
2004.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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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한인 중 최고령자이자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와 다름없던 '김방앗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LA 최초의 방앗간을 세워 유명한 김명한(사진) 옹이 6일 오후 7시30분께(현지 시각)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103세.

미국에 유학 온 아들의 초청을 받아 1967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온 김 옹은 LA한인사회의 현대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이민 이듬해 'MK 동양식품'을 열었고, 69년에는 이민 올 때 가져온 떡만드는 기계 4대로 LA 최초의 방앗간 '김방아'를 열었다.

김 옹은 이민 온 한국 노인들이 모일 장소가 변변치 않던 70년대 말 '올림픽 노인회'를 만들어 방앗간 옆에 '사랑방'을 마련했다. 그는 이곳에서 매달 노인 잔치를 열어 찾아오는 노인들에게 떡과 여흥을 선사했다. 매년 9월 열리는 코리안 퍼레이드 때는 꽃차를 타고 드럼을 두드리는 멋쟁이 할아버지였다.

그런 김 옹을 한인사회에서는 '한인 노인들의 대부'라고 불렀다. 2000년 LA다운타운 재향군인회관에서 자손 등 친지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100세 생신 잔치는 LA한인사회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말년까지 건강하게 천수를 누린 김 옹은 자손도 번성했다. 1900년 2월15일(음력) 평북 남포에서 태어난 김 옹은 1918년 결혼해 7남4녀를 두었다. 이중 6남2녀가 생존해 있으며 직계 자손이 100명을 넘는다. 김옹은 자녀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내 부인과 함께 한국에서 '장한 아버지·어머니' 상을 받았다.

김 옹은 평소 자손들에게 "우리는 모범 시민이 되자"고 가르쳤다. 올바른 가정과 좋은 시민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며 "축복의 땅 LA에서 한인끼리 돕고 사는 것에 늘 감사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진남포 상공학교를 나온 김 옹은 2세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한미장학재단 내 '김명한 지정 장학금'을 만들었고 넷째 아들 김기순씨의 모교인 칼폴리에 2만 달러의 장학금을 기증했다. 4년 전 그의 아호를 딴 '남용 재단'이 설립돼 노인 공경 잘하고 봉사하는 대학생들에게 1,000달러씩의 장학금이 주어지고 있다.

1세기를 넘게 산 김 옹의 건강 비결은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 절제된 생활, 그리고 지난해 골절상을 당하기 전까지 매일 6시에 일어나 방앗간 문을 직접 열고 닫으며 기계까지 손수 고칠 정도로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었다. 떡방아가 돌아가고 깨 볶는 냄새가 고소하게 배어나는 방앗간에 앉아 멜빵을 어루만지며 오고 가는 손님들의 말벗이 되어주던 김 옹의 모습은 한인들의 가슴 속에 오래오래 간직될 것이다.

/LA 미주본사=김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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