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자리한 저수지 서호(西湖). 며칠간의 강추위가 물러가자 호수 인근은 달리기, 체조 등 신년 초부터 건강을 다지려는 주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서호는 낙조 무렵 이곳에 드리우는 인근 여기산 그림자의 아름다움 때문에 '수원의 눈썹'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서호를 더 유명하게 한 것은 백로다. 1980년대 이후 서호와 인근 농경지에서 수백마리가 관찰됐지만 얼마 전부터 정자지구의 개발, 서호로 유입되는 지천의 오염 등으로 숫자가 줄어들더니 최근에는 여기산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생존의 기로에 놓여있다.날로 줄어드는 백로
서호를 끼고 있는 백로의 서식지 여기산은 농촌진흥청 동쪽에 위치한 해발 50여m의 자그마한 야산. 남쪽으로 서호저수지, 동쪽으로는 일월저수지와 아파트, 북쪽으로는 아파트단지와 수성로가 지나가고 있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강원도 현남면 포매리 등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로서식지 6군데가 모두 농촌지역인 반면 이곳은 도심과 매우 가깝다는 점이 특색이다.
여기산을 찾아오는 백로의 종류와 개체수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2001년부터 수원 수성고 학생들이 3년간 모니터링한 결과, 종과 개체수가 모두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 철새이므로 6월을 기준으로 할 때 2001년과 2002년 여기산에서 관찰된 백로는 중대백로, 중백로, 쇠백로, 황백로, 해오라기, 왜가리 등 모두 6종이었으나 2003년에는 황백로가 관찰되지 않았다.
개체수의 감소는 더욱 뚜렷했다. 2001년에는 180마리의 백로가 관찰됐지만 2002년에는 157마리로, 지난 해에는 107마리로 감소했다. 특히 2001년 87마리였던 중대백로가 2003년에는 30마리로 65% 이상이 줄어드는 등 감소세가 현격했다. 인근 주민 이금자(50)씨는 "얼마 전만 해도 나뭇가지가 빨갛게 될 정도로 백로들이 깃들었는데 요즘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원 수성고 강창수(43) 교사는 "서호의 수질 개선 없이 올해 수원의 명물인 백로들이 날아올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수질 악화와 공원조성이 원인
백로 개체수의 감소는 서호 북쪽 연초제조창과 동북쪽 정자지구의 아파트 건설 등 서호 인근의 개발에 기인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농경지의 감소로 채식지는 줄어든 반면 밀집화로 서호 유입천의 수질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지난 달 서호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은 평균 9.1로 공업용수 3급수 수준, 수소이온농도(PH)는 평균 6.9로 공업용수 1급수 수준이었다.
특히 지난해 9월 착공한 1만3,612평 규모의 여기산 공원건설은 백로의 서식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테니스장과 배드민턴장 10개 면 등이 들어설 예정인 이 공원이 야간에도 개장할 경우, 백로의 서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 명확하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최근 백로 서식지가 농촌진흥청 쪽에서 공원예정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서식지와 테니스장까지 거리가 320m에 불과해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
사정이 이런데도 수원시 관계자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야간 스포츠에 대한 민원이 잇달아 백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명시설을 설치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야간개장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에 대해 경희대 환경연구센터 김정수 연구원은 "테니스장 등에 대한 야간 개장이 이뤄질 경우 수년 내 여기산 백로 서식지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레포츠 공원보다는 생태공원 쪽으로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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