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 가기-라스트 사무라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 가기-라스트 사무라이

입력
2004.01.09 00:00
0 0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톰 크루즈만큼 나르시즘을 스크린에 자랑하는 배우는 없다. 그의 연기는 마치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생겼니?’라고 자문하는 것 같다. 신기한 것은 그의 나르시즘이 장르를 불문하고 통한다는 것이다.만화적인 액션물 ‘미션 임파서블 2’뿐 아니라 스탠리 큐브릭의 어두운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도 톰 크루즈의 나르시즘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에드워드 즈윅의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크루즈의 나르시즘은 시대와 공간을 건너 뛴다.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시대를 놓친 19세기의 전쟁 영웅이자 일본 천황의 초청을 받고 사무라이 집단을 무찌르는 임무를 받은 네이든 알그렌 대위를 연기한다. 그러나 인디언을 학살한 기억에 괴로워하는 그는 무사도를 신봉하는 사무라이의 규율과 정신세계로부터 감화 받고 개화기의 문명을 거부하는 이 집단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낯선 동양에 푸른 눈의 백인이 찾아와 매혹과 동일시를 느끼는 ‘쇼군’류의 영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네이드는 일본도와 바람에 흩어지는 벚꽃송이와 붓글씨를 쓰고 시를 읊는 무사의 모습에 매혹당한다. 카메라는 낯선 옷을 입고 낯선 시대에 뛰어든 톰 크루즈의 단단한 남성성에 홀린 듯 따라다니며 어떤 시대와 상황에서도 통하는 그의 매력을 강조하고 있다.

솔직히 ‘라스트 사무라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뿐이다. 이런 유형의 영화를 두고 거론되는 오리엔탈리즘에의 혐의나 다소 유치한 무사도에 대한 매혹의 시선을 정색하고 얘기하는 것도 싱겁다. 에드워드 즈윅의 연출은 빈 틈이 없고 대단원의 전투 장면은 입이 벌어지게 만들지만 그 스펙터클 게임의 알맹이는 우리의 영웅 톰 크루즈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이 여전히 볼 만 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오히려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가케무샤’에서 그랬듯이, 대포와 총의 시대에 활과 칼로 대적하려고 하는 사무라이들의 무모한 싸움이 전해주는 비장감이다.

역사 저편으로 퇴장하는 사무라이를 보는 알그렌의 시선은 인디언 학살의 정당성을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고 의탁할 만한 정신적 가치가 없는 파란 눈의 백인이 부러움에 차서 엿보는 동양의 정신세계에 대한 찬미를 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고찰을 미학 수준으로 끌어 올린 일본의 태도는 이제 바다 건너 할리우드에서 ‘킬 빌’과 ‘라스트 사무라이’를 통해 예찬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린애 같은 유치한 시선의 매혹으로 뒤범벅돼 있다.

잘 다듬어진 일본식 정원의 아름다움, 하지만 롤랑 바르트가 텅 빈 기호의 제국이라 불렀던 그 공허한 아름다움으로 넘쳐나는 일본식 미의 정원에서 톰 크루즈라는 현대적 영웅의 육체를 전시하는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여전히 톰 크루즈는 참 잘 생겼다는 찬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텅 빈 재미다.

/영화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