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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02>피스크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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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02>피스크대학

입력
2004.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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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1월9일 미국 최초의 흑인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피스크대학이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문을 열었다.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지 8개월 만에, 그리고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두 해 만에, 해방된 노예들의 배움터가 처음 마련된 것이다. 이 학교의 설립자는 존 오그덴, 이래스터스 밀로 크래버스, 에드워드 스미스 세 사람의 성직자였다. 학교 이름은 부지를 제공한 북부군 장군 클린턴 피스크를 기려 붙여진 것이다.명목상의 해방 뒤에도 흑인들이 끊임없는 법적·사회적 차별을 받았던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피스크 대학은, 그 뒤에 세워진 다른 흑인 대학들과 더불어,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 전수를 넘어서서 인종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정신의 어머니 노릇을 했다. 흑인으로서는 처음 연방 대법원 판사가 된 서굿 마셜을 비롯해, 이 학교의 몇몇 뛰어난 졸업생들은 미국의 주류 사회에까지 이름을 알리며 흑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시인 니키 지오바니, 조각가 아론 더글러스, 작곡가 존 워크, 역사학자 존 프랭클린 같은 사람들이 피스크 졸업생들이다.

그러나 이 학교의 명성과 가장 밀접히 연결된 사람들은 흑인 영가를 퍼뜨리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주빌리 싱어스일 것이다. 1871년 9인조로 출발하며 미국 전역과 유럽 순회 연주에 처음 나섰던 주빌리 싱어스는 두 해 뒤 멤버를 둘 늘여 다시 유럽 공연을 가졌다. 이 두 번째 유럽 공연이 크게 성공하면서 주빌리 싱어스와 피스크대학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고, 흑인 영가의 멜로디도 유럽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되었다. 흑인 영가가 발생한 것은 19세기 초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피스크대학을 이 장르 음악의 발상지로 받아들인다. 이 학교의 본관이라 할 주빌리 홀은 주빌리 싱어스의 공연 수익과 모금을 재원으로 해 세워졌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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