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주부 궁사가 세계 최강들을 제치고 우승하는 기염을 토해냈다.주인공은 양궁선수 생활 20년 동안 한번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이점숙(29·인천시청). 이점숙은 8일 열린 2004 서울국제실내양궁대회에서 한국 양궁의 간판스타이자 올해 세계랭킹 1위가 사실상 결정된 윤미진(경희대)과 세계랭킹 2위에 올라있는 나탈리아 발리바(이탈리아) 등 세계 강호들을 잇따라 꺾고 정상에 올랐다. 5,000달러의 우승상금을 챙기며 무명의 설움을 한꺼번에 날려 버린 것.
올림픽의 여자 양궁은 4가지(30,50,60,70m) 종목을 치르는 반면 실내양궁은 거리가 18m에 불과한데다 바람의 변수가 없어 아마추어들도 즐기는 게 특징. 그렇지만 정상급 선수들을 제친 '아줌마의 투혼'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날 여자부 결승전에서 마지막 한 발을 남기고 108―107로 앞선 이점숙이 먼저 만점인 10점을 과녁에 적중시키자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2002시드니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윤미진이 10점을 쏴도 경기를 뒤집을 수 없게 됐기 때문. 한숨을 쉬며 최후의 시위를 당긴 윤미진이 9점을 쏘자 2점이 모자란 116―118. 신장 154㎝로 국내 여자선수 최단신이기도 한 '큰언니'에게 정상을 내줬다.
군산소룡초등학교 3학년부터 활을 잡은 이점숙은 군산여고―대구서구청―인천시청을 거치며 꾸준한 성적을 냈지만 대표팀 선발전 문전에서 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특히 지난 해에는 대표팀 최종 선발전까지 좋은 점수를 유지, 대표팀 선발을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날 오후 경기에서 큰 실수를 하면서 20여년 동안 기다려왔던 태극마크를 놓치고 말았다.
이같은 불운은 선수생활을 해오는 동안 지긋지긋하게 따라 다녔고 큰 대회 우승은 98년 대만에서 열렸던 아시아서킷대회 개인, 단체전 우승이 고작이었다. 이점숙은 이후에도 활시위를 놓지 않았다.
2000년 역시 선수 출신인 김철용씨와 결혼한 뒤 아들을 낳고도 연습에 몰두하는 등 누구보다 양궁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이점숙을 지켜보아 온 공미화 인천시청 감독은 "평택의 시댁에 21개월된 아들을 맡기고 인천에서 합숙 훈련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며 "점숙이는 자기 조절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해 언젠가는 빛을 볼 줄 알았다"고 기뻐했다.
우승을 확정한 뒤 아들이 제일 보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 이점숙은 "올해의 목표는 당연히 올림픽 출전"이라며 3월로 예정된 대표팀 선발전에서의 선전을 다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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