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8일 한나라당에선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본회의에서 비준안 처리에 대한 찬성토론에 나설 사람이 없어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의원에게 총대를 메게 한 것이다. 비준에 찬성하는 대부분의 도시 출신 의원이 혹시 농민단체의 낙선운동 표적이 될까 봐 손사래를 치며 죄다 뒤로 숨었기 때문이다.당 지도부는 한때 이런 치졸한 모습이 마음에 걸린 듯 찬성토론을 포기할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결국 오 의원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최병렬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의장 및 3당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차제에 여당의 역할을 확실히 해보라"며 열린우리당쪽에 짐을 지우려 했다.
민주당은 아예 찬성 토론자를 물색조차 하지 않았다. 도시 출신 의원들은 "찬반논리야 이미 다 드러난 것인데 뭣하러 같은 말을 반복하느냐"며 토론 자체에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의장이 각 당 대표에게 "반대토론은 줄을 잇는데 찬성토론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역정을 낸 것은 당연하다. 찬성토론은 3당의 떠넘기기 끝에 열린우리당이 3명을 내보내기로 해 가까스로 모양을 갖췄으나 그나마도 본회의가 파행을 겪는 바람에 오 의원만 나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도시 출신 의원에게 FTA 비준안 처리문제는 그저 '강 건너 불'일 따름이었다. 평소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입장에선 비준안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입바른 소리를 하던 이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거에 피해가 오지 않을 때 얘기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대표는 드물고 오직 선거밖에 안중에 없는, 비겁한 정치꾼이 득실거리는 게 우리의 국회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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