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책을 보지 않아도 불안해 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더러 뭐 그렇게 불안해 하느냐고 말하곤 하지만 나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의 경우는 책 중독이라기보다 활자 중독인 편인데 혼자 밥을 먹거나 전철 안이나 화장실에 들어갈 때 찢어진 신문이라도 보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화가 끊기거나 무안한 일이 생길 때면 아무 글자에게나 도망을 쳐서 그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기까지 한다.얼마 전 3주간의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행은 많은 골칫거리에서 멀어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글자들로 이루어진 것들이었으므로 이번 여행은 어찌 보면 글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여행이었는지도 몰랐다.
낯선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오늘의 뉴스나 사건들은 잠시 잊어도 될 것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16시간 동안의 뱃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을 가방 깊숙이 넣고는 여행안내서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권의 책을 꺼내 허겁지겁 탐식하고 나서는 서점에서 구한 지도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시간이 갈수록 입장권이나 상품 상자에 인쇄된 글씨, 꼬깃꼬깃해진 영수증의 숫자들까지도 그 속에 다른 의미라도 숨어 있는 것처럼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외롭다고 느껴질 때면 더욱 글자에 집착했다. 어느새 글자들은 글자 자체만으로도 내게 위안을 주고 있었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라더니, 활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여행이 활자에 대한 귀환으로 되어버리리라는 것을 나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 운 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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