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가 심상찮다. 고구려를 한낫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공작이 본격화되었다. 중국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정 회의가 자국에서 열리는 것을 기회로 중국사에 편입시킬 태세다. 한반도 통일 이후를 겨냥한 중국의 외교정책이 풀 가동되는 느낌이다.중국의 이 같은 행동은 중화 우월주의에서 나온, 극히 일관된 것이다. 남북을 큰 그림으로 바라보고 통일 이후를 대비하려는 원대한 '변방정책'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사대주의 역시 뿌리 깊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우리 정치계는민족사적 백년대계는 고작하고 십년의 로드맵조차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니 문제는 더 심각하다. 식민역사 청산을 위한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조차 잘라내는 알량한 국회의원들에게 민족의 장래를 맡기고 있으니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제 목소리 한번 못 내는 것 아닌가.
중국과 국교정상화 이후 최근에는 유학 및 사업 등으로 중국을 오가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중국을 잘 알자는 것과 무관하게 신사대주의파가 다수 생겨나고 있다. 물론 지금은 구한말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미국·중국·소련을 믿지 말고 속지도 말라던 당대 민중들의 노래는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신사대주의의 결과가 가져올 엄청난 악영향에 대하여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
'민족은 없다'는 식의 담론이 판치는 세상에서 허울좋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국제적 친교와 상호 이해라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자국의 이익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할 따름이다. 어떤 명분으로든 실익 없는 국제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
자칫 잘못되어 고구려 고분벽화가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 정치판은 싸움판에만 몰두하고 있다.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에 관한 대책이 지난해 말부터 꾸려지기는 했으나 그 정도로는 중국의 국가적 밀어붙임을 막아내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역사학계도 반성해야 한다. 신라사 전공자에 비하여 정작 고구려사 전공자는 지극히 적다. 그나마 북한학계에서 고구려사를 대내외로 챙겨왔다. 그래서 남북공조가 이번처럼 소중할 수 없다.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남북공조의 대응전략만이 역사적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주 강 현 한국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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