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민당 정부가 엘리트 대학 10여 곳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국 280개 대학이 거의 평준화된 데다 대학입학자격시험, 아비투어(Abitur)만 통과하면 누구나 대학에 들어가는 지금 체제로는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알리안츠 등의 민간기업 주도로 베를린에 설치한 미국형 비즈니스 스쿨인 유럽경영기술대학(ESMT)과 같은 엘리트 대학들이 잇달아 생길 전망이다. 그러나 교육에도 평등의 이념을 고수해온 사회에서 대중교육과 엘리트교육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논란이 많다.■ 영미와 프랑스 등에서 일반화한 엘리트교육이 독일에서 논란되는 것은 엘리트교육을 받을 인재를 선별하는 것부터가 헌법정신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대부분 국립인 개별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것부터 금지하고 있다. 개개인이 원하는 분야의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를 봉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계층간 이동을 막아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정신에서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 등 실험시설이 특히 필요한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대학 지망생의 아비투어 성적과 지망분야 등을 도르트문트의 대학배정기관 컴퓨터에 집어넣어 제비뽑기 식으로 대학을 정해준다.
■ 이 때문에 독일은 대학생의 천국으로 불린다. 정원 제한 없이 누구나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는데다가 학비도 없어 10년 가까이 대학에 적을 두는 만년대학생이 수두룩하다. 대학생 숫자도 1950년대 20만 명에서 10배 이상 늘어 대학마다 시설부족이 심각해 '만성 대학병'이란 용어가 생겼을 정도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대학교육 유료화가 거론됐지만, 정치권부터 국가의 기본이념이 무너진다며 반대해 실현되지 않았다. 이런 사회에서 좌파 사민당이 엘리트교육을 들고 나온 것은 그만큼 개혁이 절박하다고 인식한 결과다.
■ 우리 시각에서는 지극히 바람직한 엘리트 양성이 논란되는 또 다른 이유는 엘리트 교육 자체가 국가 경쟁력 제고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 증거로 이웃 프랑스의 경험이 거론된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국립행정학교 등에서 인재를 집중 양성,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과 관료가 대부분 이 학교 출신이다. 그러나 이런 엘리트위주 교육이 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21세기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 양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반성이 높은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멀리 유럽의 교육논란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궁금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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