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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화계 읽기](4) 합법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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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화계 읽기](4) 합법 욕망

입력
200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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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으면 명예와 돈을 얻는 세상이다. 엑스터시 복용 사건으로 구속됐던 성현아는 유명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벗어서' 단번에 세를 역전시켰고, 'H양 비디오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며 눈물의 인터뷰를 했던 함소원은 '헤어 누드'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중년의 인터넷 접속도를 가속화한 '몰래 카메라'의 피해자 백지영은 속옷을 선물하는 성인 전용 공연으로 다시 화제를 불렀다. 스캔들의 희생자를 소생시킨 것은 누드, 섹스어필이다. 욕망을 자극하고, 자극받은 대중은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욕망 산업이 이렇게 번창한 적은 없었다.더 좋은 몸, 몸, 몸을 향해

'짱' 문화는 이제 몸을 향해 치닫는다. 10대는 '얼짱'이 되기 위해 쌍꺼풀계(契)를 들고, 20대가 되면 헬스클럽에서 살을 뺀다. 30대가 되면 지방흡입술을 시도하고, 40대부터는 노화방지 호르몬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이렇게 부단한 노력을 통해 '몸짱'에 도전한다. 디지털 카메라로 수시로 자기의 몸을 찍어 사이트에 올리고, 때로 과감하게 누드에 도전한다. '민간인'이라고 벗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이브 프로젝트'는 셀프 누드를 올린 일반인 중에 '1대 이브'를 선발해 누드집을 낼 예정이다. 염색과 피어싱은 더 이상 얘깃거리도 아니다. 육체는 이제 신성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내적 욕망의 연습장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소, 욕망하는 육체

욕망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인정된, 거대한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욕망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뀐 때문이다. 페미니즘, 생태주의는 자유로운 정신의 담지자로서 '몸'을 인정했다. 이런 거대한 흐름은 시장 도구를 타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세계 정상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0위의 휴대전화 보급률 등이 뒷받침하는 막강한 '사적' 미디어는 특히 누드·AV(성인영화) 등 에로틱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컨텐츠를 중심으로 시장성을 굳혔다. 이제 에로티시즘은 엿보기의 대상이 아니라 열려 있는, 합법적 공간의 엔터테인먼트다. 휴대폰 P2P 서비스가 본격화할 경우, 누드·AV 등의 부가가치는 더욱 커지고, 방송이나 영화에서 섹스신이 가능한 연령도 점점 더 어려질 것으로 보인다. 욕망의 목구멍은 더 급속히 대중을 빨아들일 것이다. 욕망을 허락하는,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과 자본의 논리가그렇기 때문이다.

'콤플렉스 프리' 세대의 상징

워싱턴 포스트는 성전환, 누드 발간 등을 두고 '한국이 유교적 사고 방식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콤플렉스 프리'(Complex―free)란 말이 보다 정확할 듯하다. '옥탑방 고양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 지난해 TV드라마, 영화 히트작은 물론, 현대판 '노비문서'가 등장하는 인터넷 소설 및 영화 '내 사랑 싸가지' 등에서 사회적 '계급'의 차이는 사람 사이의 욕망의 흐름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들은 '필'이 꽂히면 서로를 갈망할 뿐이다. 비교적 안락한 경제적 환경에서 자라난 80년대 이후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취향'이 계급을 대신한다. 많은 인터넷 소설의 기본은 탈계급, 탈이데올로기적이다. 그 영향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콤플렉스 없는' 세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또 그들이 드러내놓고 욕망을 좇는 방식이 '트렌드'가 되면서 인접세대인 30·40대까지 따라 나서고 있다.

내면의 욕망이 소리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바람난 가족' 등 사적 욕망이 가족이나 도덕률에 우선함을 선언한 영화가 잇따라 히트하고 있는 것은 그 증거이다. 임상심리학자 겸 영화평론가인 심영섭씨는 "수치의 문화가 사라진 때문"으로 해석했다. "학교, 가족 등 준거집단의 규율이 깨지면서 개인이 중심이 되고 육체에 관심이 집중된다. 육체적으로 멋져 보이기(Well Looking)가 그 예다. 정신적으로도 수치는 사라지고 있다.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함께 살기 싫다는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로티시즘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죽음과 연결돼 있다'는 바타이유의 말처럼, 이 시대 준거집단을 잃어버린 군중은 '날마다 죽어가며'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것일까.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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