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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이병훈 PD/"현실서 이루지못한 꿈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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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이병훈 PD/"현실서 이루지못한 꿈 보여주고 싶어요"

입력
200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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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 국민은 두 종류로 나뉜다. '대장금'을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이다.MBC '대장금'이 '꿈의 시청률'이라는 50%를 넘기고 13주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허준'(1999), '상도'(2001)에 이어, 역사의 한 갈피에 이름 없이 묻혀있던 한 여성의 삶을 감동적으로 복원해 내 갈채를 받고 있는 이병훈(59) PD. 요즘 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새해 첫 촬영을 한 2일 '대장금' 세트가 자리한 경기 양주시 MBC 문화동산에는 남은 길을 축복하듯 서설(瑞雪)이 내렸다. 그러나 이 PD의 첫 마디는 "두렵다"였다. "전쟁 등 숱한 어려움을 겪은 우리 세대는 기쁜 일이 있어도 마냥 웃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고통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더구나 요즘 시청자들의 눈과 귀가 워낙 매서워 종착역에 닿을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는 '겸손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하자 그제서야 "모든 연출자가 지향하는 재미와 유익함을 둘 다 그럭저럭 살린 것 같다"며 속마음을 살짝 드러냈다.

그가 생각하는 성공 요인은 뭘까.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시청자들의 기호를 잘 읽어냈다는 등의 분석이 있지만, 어느 연출자가 그런 노력과 자신감 없이 작품을 만들겠나. 하지만 열에 여덟, 아홉은 실패한다. 90%는 운이고, 나머지 10%가 작가와 연출자, 연기자들의 노력 몫이라는 게 30년 이 생활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이 PD는 '대장금'을 기획하면서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번째는 무조건 쉽게 만들자는 것. "2년 전 '상도'를 할 때 성공을 확신했다. 원작소설이 100만부나 팔렸고, 돈 버는 얘기라면 누구나 관심이 있지 않은가. 고작 1분 나오는 유기 공정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인간문화재를 모시고 꼬박 이틀 동안 찍는 등 공도 많이 들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너무 어렵게 만든 게 패인이었다. 지금도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상도'를 꼽지만 시청자의 판단은 옳았다. 드라마는 무조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 뼈 아픈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유치하다는 소릴 듣더라도 쉽게 만들자"고 작정했고, 초등학생들까지 열광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덤으로, 라이벌인 김재형 PD의 '왕의 여자'(SBS)를 가뿐히 눌러 '상도' 때 '여인천하'에 당한 패배도 설욕했다.

또 다른 목표는 '허준'과의 철저한 차별화. 기록에 없는 장금의 전력을 수라간 나인으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방송사측은 "음식 드라마는 안 먹힌다"며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행여 음식 이야기가 먹히지 않을 것에 대비, 장금의 집안 내력을 드라마틱하게 꾸미고 장금―한 상궁과 금영―최 상궁의 대결 구도를 극적인 대비로 몰고 갔다. 결과는 역시 성공.

궁중음식 이야기도 화제 만발이었지만 '한 상궁 신드롬'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 PD는 그 공을 작가 김영현씨와 한 상궁 역의 양미경에게 돌렸다. "내 자식은 물론 손자도 작가는 안 시키고 싶을 만큼 창작은 고통스런 과정이다. 한 상궁이 미각을 잃은 장금에게 '맛을 그리라'고 가르치는 대목은 정말 기막힌 발상이다. 작가가 사극 경험이 전혀 없지만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데 기대를 걸었는데 적중했다." 그는 양미경에 대해서도 "헤어질 때 시집을 선물하더라. 정말 센티멘탈리스트다. 그런 다정다감한 모습에 고운 외모까지 한 상궁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추켜세웠다.

그는 촬영장에서 좀처럼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것도 좋은데 이렇게 다시 한 번 가지" 한다. 연일 밤샘하는 강행군에 짜증날 때가 왜 없을까마는 그는 "연기자들이 워낙 잘 따라줘서 화 낼 일이 없다. 이영애 등 주요 배역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스런 캐릭터를 잘 소화한 연생 역의 박은혜, 바로 우리 자신인 소시민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 민 상궁 역의 김소희 등 다들 제 몫을 해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허준'의 예진 아씨 황수정 등 숱한 여성 탤런트를 '스타'로 키웠다. 캐스팅의 최우선 조건을 물었더니 "선한 눈빛"이라며 "눈빛이 선한 사람은 누구나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상형'은어떤지 좀 짓궂은 질문을 던지자 당찬 여성상을 그려온 연출자답지 않게 "조용한 여자. 목소리 큰 여자 보면 겁부터 나고 감당을 못한다"며 껄껄 웃었다.

이 PD는 50%를 웃도는 시청률보다 젊은이, 특히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본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허준'을 기획할 무렵 대학생 딸이 '아버지, 이제 사극 하지 마. 칙칙해서 싫어' 했다. 억장이 무너졌다. 젊은이들도 좋아하는 사극을 만들자고 단단히 각오했다."

그가 오랜 연구 끝에 집어낸 포인트는 스토리와 색채, 그리고 음악. "궁중암투에서 벗어나 '서민 사극'을 시도한 것도 별난 역사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현대극처럼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목욕 신 등도 과감히 버렸다. 솔직히 고백하면 시청자들 눈길을 잡아볼까 하는 낡은 생각으로, 나인 시험을 앞둔 연생과 창이가 목욕 재계하는 모습을 찍었다. 이야기 전개상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고 예쁘게 찍혔지만 어린이 시청자들이 많다는 데 생각이 미쳐 미련 없이 버렸다."

그는 "화사한 화면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상"이라며 "이영애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을 찾기 위해 무려 50벌의 옷을 만들어 입혀봤다. 의녀 복장은 분홍 저고리에 감색 치마, 엷은 하늘색 가운으로 정했는데,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예쁘다"고 소개했다. 음악은 '허준' 때부터 영국에서 뉴에이지 음악을 전공한 임세현씨에게 맡겼다. "'오나라 오나라∼'하는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노래가 인기를 얻은 것도 국악의 구성진 가락에 현대적 분위기를 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드라마란 뭘까. 그는 "보는 이에게 즐거움과 꿈을 주는 것"이라면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 혹은 이루고 싶고, 이루려고 노력하는 꿈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의 다음 행보가 벌써 궁금해진다. "역시인물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미처 살피지 못한 과거의 기록 속에 또 다른 '작은 영웅'이 내 손길을 기다리며 잠 자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올 봄 '대장금'이 막을 내리기 전에 그 영웅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대장금" 5문5답

―정말 50회로 끝나나.

"수라간 얘기가 당초 계획보다 10부 늘어나 60회로 연장을 검토했지만, 이영애가 건강과 스케줄 문제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안다. 현재로선 50회로 끝낼 수밖에 없다. 이영애의 입장을 이해한다. 연장 여부는 방송사와 연기자가 협의할 사안이다. 연출자인 내가 나설 문제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남은 18회로 본론인 의녀 얘기를 풀어가기가 좀 빠듯하긴 하지만, 스피디하게 가면 된다. 미니시리즈는 16부로 별의별 얘기를 다 하지 않나."

―시놉시스에는 금영이도 승은(承恩)을 입는 것으로 돼있는데.

"맞다. 금영(홍리나)이 후궁(숙원)이 되어 의녀 장금과 다시 갈등하는 것으로 설정했다가 금영이 최고상궁에 오르는 것으로 내용을 바꿨다. 금영이 악역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목표가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진취적 여성인데 후궁으로 들어 앉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각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장금과 금영의 갈등은 계속 된다."

―의녀 장금의 손 대역은?

"수라간 시절 음식 만드는 손 대역을 두고 하도 말이 많아 이번에는 신경을 좀 썼다. 한의학 자문을 하는 동국대 분당한방병원에 손 대역 추천을 의뢰하면서 "통통한 손은 절대 안 된다"고 부탁했다(웃음). 이 병원의 20대 여성 레지던트가 침 놓는 장면 등을 대신 연기하고 있는데, 장덕(김여진)의 손 대역도 겸한다."

―동료 의녀들도 실존 인물인가.

"32회 의녀 시험 장면부터 등장한 은비(이승아)와 신비(한지민) 열이(이세은) 등은 모두 중종실록에 나오는 실존 인물이다. 물론 실록에는 "누가 무슨 공을 세워 상을 받았다"는 등 짤막한 기록만 있다. 이름만 빌려왔을 뿐 개개인의 이력과 에피소드는 대부분 허구다. 열이는 금영처럼 장금과 경쟁하는 관계, 신비는 연생처럼 심성 고운 친구로 설정했다."

―장금과 민정호의 사랑은 이루어지나.

"극비인데…(웃음). 아마 가장 궁금한 부분일 것이다. 민정호(지진희)는 내의원 부제가 되어 장금이 임금의 주치의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중종이 장금을 '여자'로 보게 되면서 딜레마에 빠지고, 세 사람의 묘한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이병훈 작품에선 도대체 사랑이 이뤄지는 법이 없다고 불평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시놉대로 장금과 민정호를 맺어줄 생각이다. 변수가 많아 결과는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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