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4년 만에 첫 시집을 낸 할아버지 시인이 있다. 195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한미시작품 공모전에 당선되었던 김돈식(82·사진) 옹이 최근 시집 발간했다. 김 옹은 15년 전 시집 '매처학자'를 내긴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출간하자마자 회수해 이번 시집이 사실상 첫 시집이다.시집의 제목인 '석화촌'은 김 옹이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 사능리에 꾸며 놓은 꽃동산. 1만2,000여평에 철쭉, 연산홍, 자산홍 등 꽃나무와 400여점에 이르는 석불, 석탑이 있어 서울 근교의 명소로 꼽힌다. 50여년 전부터 꽃나무를 수집하고 가꿔온 김 옹은 1988년 남양주에 땅을 마련해 석화촌을 조성했고 지난해 4월부터 경기 이천시 원적산 기슭에 '봉래산'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꽃동산을 만들고 있다.
김 옹은 "꽃밭을 만드는 것은 시작(詩作)을 하는 것과 같다"고 스스로를 자위해 오면서도 언젠가는 꼭 시집을 낼 요량이었다. 다만 부족한 것이 많아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가지고 있으면서 다듬으니까 무게가 있다"는 자평이다. 특히 지난해 이천으로 집을 옮긴 뒤로는 시가 많이 나온다.
김 옹의 시에는 자연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노(老) 시인의 순수하고 초월적인 마음이 실려 있다. '밭에서 김매다/ 낱알 나무가 뽑혔다/ 놀라 소리지른다/ 밭머리에 쫓겨난 풀들이/ 그것 잘됐다고 고소해 한다'('김풀') 등이 전형적인 예다. 혜화전문 시절, 스승인 피천득(94)옹으로부터 '이 시대의 마지막 자연주의 시인'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대로다. 피 옹과는 요즘도 왕래가 잦다.
"어젯밤에는 창으로 들어온 달과 함께 잤다"는 노 시인의 말에서는 진한 시심이 묻어 나온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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