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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눈꽃 산행/순백세상으로 가는 길 주목은 이정표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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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눈꽃 산행/순백세상으로 가는 길 주목은 이정표가 되고…

입력
200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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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이면 강원도의 산하는 눈꽃 세상이다. 새날을 위한 희망의 여백이라도 되는 듯이…. 하얀 백지 위, 그 곳에서 서면 절로 다짐이 선다. 공기 한 톨마다 생명수가 깃든 양, 수증기 한올한올 하얀 눈꽃으로 맺혀지는 곳. 영험이 깃든 태백산에 오르면 올해는 뭔가 이뤄질 법하다.눈꽃 강원 여행은 기차라야 아귀가 맞다. 청량리역에서 태백·강릉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루 일곱 번 운행되는 기차는 겨울이면 항상 만원이다. 그래서 태백역이나 정동진역 등으로 곧바로 가는 눈꽃 열차가 따로 편성돼 승객들을 실어나른다. 운이 좋았던지 정기선 오전 8시 첫차의 자리를 얻었다.

mp3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조관우의 '겨울이야기'를 들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읽는다. 제법 겨울 기차여행의 멋이 익어가나 싶은데, 어찌된 일일까. 차창 밖은 온통 황토색이다. 눈이 없다. 앙상한 나뭇가지의 산야는 서늘한 바람만이 가득 찼다.

불안한 마음에 태백시에 도착했지만, 역시 마찬가지. 9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태백산 눈축제 플래카드만이 눈에 띌 뿐 눈이 온 자취가 없다. 시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태백산에 눈이 무릎까지 쌓일 정도로 내렸는데, 올해는 잠깐 눈이 내린 후 소식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강원의 다른 지방도 매양 한가지다. 천수답의 농민처럼 애타게 하늘만 쳐다본다.

그래도 태백산 정상은 다르지 않을까, 더구나 새해 첫날 산행인데…. 눈도 눈이지만, 태백산에서 보는 신년 일출이 또한 장관이다. 요즘 태백산의 일출은 오전 7시30분 전후. 오전 5시께 백단사 매표소에서 출발했다. 태백산에 오르는 길은 모두 세 곳. 모두 두 시간 정도의 코스지만, 당골광장과 유일사에서 출발하는 코스에 비해 비교적 사람이 덜 붐비는 곳을 택했다.

여명조차 없는 어둠 아래서 랜턴에 의지했다. 늘어선 사람들의 산행으로 랜턴은 반디불이처럼 곳곳에서 반짝인다. 초반 비탈에서 힘이 다 빠질 듯 했지만 첫 고비만 넘기면 다음부터 완만하기 이를 데 없다. 태백산은 해발 1,567m의 고산이지만, 이미 900여m 지대에서 출발하는데다 등산로도 평탄해 초등학생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40여분 오르자 등산로의 반쯤에 해당하는 반제에 이르렀다. 산행 도중 잠시 쉬는 곳이다. 당골 광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합쳐져 사람들이 더욱 붐빈다. 반제를 지나서부터 길바닥이 미끄럽다. 눈길이었다. 12월말께 한번 눈이 왔다고 하더니 녹지 않고 있었다. 아이젠을 끼지 않으면 오르기가 쉽지 않다. 드디어 주변의 나무들이 하얗게 영근 게 어슴프레 비쳐왔다. 상고대다.

상고대는 겨울철의 열매다. 영하의 겨울 밤에 대기중의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으면서 생기는 눈꽃이다. 날이 밝기를 고대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한 비탈을 더 넘자 거의 평지와 다름 없는 산길이 나온다. 이내 정상 못 미쳐 망경사(望鏡寺)에 다다랐다. 해발 1,470m.

이 곳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샘이 있다. 샘 위에 용왕각을 짓고 용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이름도 용정(龍井)이다. 망경사를 조금 더 오르면 단종의 넋을 기린 단종비각도 세워져 있다.

망경사의 유래도 천년을 거슬러 오르지만, 아무래도 망경사는 태백산 정상을 공략하는 등산인의 베이스캠프처럼 보인다. 새벽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사찰 구석구석에서 하나둘 짐을 풀어 버너를 피우고 라면을 끓인다. 새벽 산행에서 먹는 라면 맛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포만감에 젖을 즈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자 주변의 사물이 드디어 제 색깔을 찾는다. 온통 하얀색이다.

봄이면 연분홍 꽃을 피울 철쭉이 온통 하얀 눈송이를 머금었다. 한번 찾았던 눈이 녹지 않고 있었고, 새벽마다 나무들이 눈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 눈안개마저 뒤덮여 천지가 희뿌였다. 고대하던 설국의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10여분을 더 오르자 정상이다. 정상을 감도는 바람 소리가 기적 소리처럼 요란하게 몰아친다. 바람에 맞닿는 살갗이 얼어붙는 듯 했지만, 정상에 선 감격에 비할 수 없다. 태백산 정상에 자리잡은 천제단은 아예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개천절마다 제사를 지내는 이곳은 우리나라 단군신앙의 모태인 곳이다.

하지만 짙은 눈안개로 일출 보기는 힘들어졌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유일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출을 못봤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사실 태백산의 깊은 맛은 따로 있다.

유일사∼천제단 등산로에 있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간다는 주목(朱木) 군락지에 이르자 선계(仙界)가 따로 없었다. 폭설과 강풍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나, 죽어서도 천년을 버틴다는 그 기품부터 고고하다. 하얀 눈꽃과 우아하게 뻗어난 가지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지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지조의 나무 앞에서는 신년의 다짐조차 사사로와 보였다. 마음이 절로 비워진다.

/태백=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태백산 눈축제가 올해 열한번째를 맞아 9일부터 18일까지 태백산 도립공원 당골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만리장성, 로마의 개선문, 피라미드 등 세계적 유적을 본딴 거대한 눈조각이 광장 일대에 전시돼 설국의 분위기를 띄운다. 가족이 직접 눈조각이나 눈사람을 만들 수 있고, 시베리안 허스키가 끄는 개썰매도 탈 수 있다.

눈썰매장에서 썰매타기, 스노우 모빌 체험 등 눈밭 위에서 뒹굴 수 있는 즐길거리가 풍성하게 마련된다. (033)550-2081 www.snow.taebaek.co.kr

태백·강릉행 기차는 새마을 1회, 무궁화호가 6회 운행된다. 1월2∼18일, 1월 28일∼2월22일에는 태백산 눈꽃 특별열차가 당일코스로 하루 한차례 왕복 운행되고, 정동진을 돌아 태백으로 가는 무박 2일 코스도 운행된다.

문의는 철도고객센터(1544-7788) 또 국내 여행사들의 태백산눈축제 여행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당일은 4∼5만원. 무박2일 상품이 5∼6만원선이다. 하나강산(02-2253-2500) 청송여행사 (02-853-7787), 홍익여행사 (02-717-1002) 등

태백산의 각 등산로 입구마다 여관이나 민박집이 마련돼 있다.

당골 광장앞에는 우진모텔(033-553-6648), 태백산 민박촌(553-7460), 백단사 앞에는 태백산모텔(552-5977), 생수민박(552-3939), 유일사 앞에는 정거리민박(552-717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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