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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뇌종양 사형선고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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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뇌종양 사형선고의 악몽

입력
200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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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유쾌한 술자리였다. 일행 중에 첫 시집을 낸 시인이 있어 덕담이 오고 갔다.한 순간이었다. 도끼로 머리를 찍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머리 속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난 것도 같았다.

나는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방 안의 산소가 모두 사라져버렸는지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옆 자리의 선배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중얼거렸다. "형. 나 죽을 것 같아."

"야. 장난치지마." 그 선배에게는 나의 말이 장난으로 들렸나 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 구토로 나타났다. 오, 맙소사. 지독한 구토가 시작됐다. 끝이 없는 구토였다.

병원 응급실로 가자는 권유에 나는 단순한 구토로 알았다. 그래,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달래며 고통스러운, 지옥 같은 밤을 보냈다. 머리가 너무 아팠기에 진통제를 몇 알 먹어보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아침에 병원에 가자는 권유에 하루만 더 참으면 저절로 났겠지 하는 생각에, 다시 하루 낮과 하룻밤을 바보처럼 보냈다. 구토는 진정됐지만 알 수 없는 두통이 내 머리 속을 북처럼 두들기며 괴롭혔다.

머리에서 딱 소리가 난 지 30여 시간이 지나서 병원을 찾았다. 이미 왼쪽 눈은 감겨져 버렸다. 내 의지로는 도저히 눈꺼풀을 움직일 수 없었다.

병원에서 몸은 평온해졌다. 진통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몸이 편안해지는 것과는 달리 주변이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머리 사진을 찍었다. 모두들 내게 태연한 척했지만 표정들이 어두웠다. 나는 20대 후반과 30대 전부를 사회부 기자로 보냈다. 비록 한 눈이 감겼다 해도 내가 그 분위기를 읽지 못할 수는 없었다.

함께 산을 다니는 산악회 선배인 병원장을 잡고 물었다. "선배.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병원장은 나의 직접화법 질문에 잠시 흠칫했다. 다 알고 있다는 내 표정에 순순히 털어 놓았다. "수술을 해봐야겠지만 지금 상태로 2개월 정도 밖에 못살 것 같다."

내가 받은 진단은 뇌종양이었다. 머리 한 가운데 탁구공 만한 종양이 있고, 그 놈이 6번 시신경 줄을 탁 쳤다는 것. 그래서 눈이 감겼다는 것이었다.

'내 생명이 앞으로 2개월이라….' 그 순간 병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그 며칠 사이 나는 무려 16kg이나 빠진 영락없는 '귀신형용' 이었다. 또한 나는 애꾸로 변해있었다.

잊을 수 없는, 1998년 5월 14일 밤의 일이었다. 불혹, 마흔 고개를 막 넘어선 직후였다. 다행히 운은 좋았다. 종양은 양성이었고, 부산 백병원에서 좋은 의사를 만나 수술에 성공했다.

정 일 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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