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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무대의 카리스마 박정자 <31> 라이벌 그리고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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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무대의 카리스마 박정자 <31> 라이벌 그리고 라이벌

입력
200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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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질투심을 뿜게 하는 라이벌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다.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삶을 기름지게 하며, 다른 세계로 나아가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소중한 존재다. 따라서 살면서 단 한번도 멋진 맞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지면을 빌려 그토록 소중한 나의 라이벌들을 소개하기로 한다.먼저 타의에 의해 라이벌로 규정된 김금지. 흔히 세상 사람들이 즐겨 우리 둘을 묶어 한국 최고의 여자 배우라는 딱지를 붙이곤 한다. 여자, 여배우, 여성 예술인 따위의 명칭을 나는 미워한다. 끔찍이 싫어한다. 사람이면 그냥 사람이고 배우면 그냥 배우고, 예술가면 그냥 예술가지 거기에 구태여 생물학적 성(性) 구별을 달아야 하는 까닭이 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싫든 좋든 사람들은 우리 둘을 그렇게 부른다. 김금지는 참 좋은 배우다. 그러나 극단 자유에서 같이 활동하던 시절 우리 두 사람은 자주 충돌했다. 나는 직선이다. 에둘러 말할 줄을 모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의 마그마를 식히는 재주가 없다. 김금지는 정반대다. 하지만 그도 강하다. 성격이 하늘과 땅 차이인 만큼 우리 둘은 자연히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을 수밖에. 굳이 빈번한 충돌로 생긴 상처가 다 아물었다고 빈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김금지는 좋은 연극 배우고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가정이라는 자신의 성(城)을 사수하고 있는 영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진짜 라이벌로 여기는 사람은 따로 있다. 석화.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활동 경력에서도 차이가 나는 윤석화가 왜 라이벌이냐고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내 대답은 한결 같다. "석화는 나보다 팬이 더 많고, 더 젊고, 가진 게 많고 더 예쁘니까." 어린 후배로만 보이던 석화가 큰 배우로 다가왔던 건 그가 주연한 '마스터 클래스'를 본 뒤였다. 공연이 끝나고 난 석화에게 말했다. "석화야, 공연이 참 좋다. 네가 정말 멋지더라." 빈말 하기를 워낙 싫어하는 터라 칭찬에 인색한 나였지만 그때 만큼은 말의 성찬을 아끼지 않았다.

석화는 통이 크고 겁이 없다. 나 같으면 꿈에도 저지르지 못할 대형 사고를 가끔 친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덜컥 들여와서 연출에다 제작까지 도맡았을 때 곁에서 나는 걱정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석화는 끄떡하지 않고 일을 치러냈다. 내가 손꼽는 라이벌이지만 석화는 어려울 때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나를 도와준다. 그런 석화에게 내가 유일하게 화를 낸 때가 있다. "선생님 저 연극때려 치우고 이민 갈래요." 석화가 그런 소리를 할 때마다 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석화 없이는 너무 외로울 것 같으니까. 석화가 하는 연극이든 월간 '객석' 일이든 뭐든 제발 잘 되기 바라는 이유다.

그리고 윤소정이 있다. 나에게 가장 많은 칭찬을 해주는 라이벌이다. 공연이 끝나면 늘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 채 나를 향해 웃어 보이는 소정이. 소정이의 칭찬을 들으면 자연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이어서 없는 말을 지어 하지 못하는 걸 잘 아니까. 내가 연극을 같이 하자고 할 때 단 한 번도 망설임 없이 나서준 그가 늘 고마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손숙은 참 따뜻한 사람이다. 그러나 따뜻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무심한 구석도 있다. 손숙은 늘 정에 목말라 하지만 정작 거꾸로 나는 그가 주는 정에 목말라 있다. 그는 종종 말하곤 한다. "형님, 우리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어요."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이 약속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방송하랴, 사회활동하랴, 좀처럼 틈이 나지 않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리운 걸 어째. 나는 가끔 손숙을 독차지하고 싶은 열망에 빠진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묻는다. "이렇게 라이벌을 사랑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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