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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경제대국 브릭스]<4>러시아-초라한 韓·러 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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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경제대국 브릭스]<4>러시아-초라한 韓·러 경협

입력
200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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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송유관을 잡아라."지금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제2의 중·일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확보하기 위한 이 치열한 경쟁을 유독 한국만 강건너 불보듯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베리아 석유 확보위한 중·일 로비전

지난해 5월26일∼28일 후진타오 중국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모스크바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졌다. 회담 후 중국 관영지는 오는 2030년까지 51억3,000만 배럴의 원유를 시베리아 앙가르스크 유전지대로부터 도입키로 하고 이를 위해 중국 북동부의 다칭(大慶)으로 송유관을 건설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미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으로서는 안정적인 석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이 그 대안이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베리아 앙가르스크 유전의 송유관은 중국 동북부쪽으로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일본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틀 뒤인 5월3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난다. 이후 6월20일 푸틴 대통령은 느닷없이 "앙가르스크 유전 송유관 노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힌다. 12월15일에는 미하일 카시야노프 러시아 총리가 일본 도쿄를 방문, 고이즈미 총리와 회담을 갖고 "일본에서 추진하고 있는 앙가르스크-나홋카 송유관 건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에너지 안정에 중요하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일본이 막판 뒤집기로 송유관 노선을 바꿔버린 것이다.

굳히기와 뒤집기, 한국만 수수방관

3,800㎞의 앙가르스크-나홋카(러시아 연해주) 노선은 2,400㎞에 불과한 앙가르스크-다칭(중국) 노선의 2배인 58억달러가 소요되는 사업이다. 이처럼 높은 공사비와 중국과의 암묵적 합의를 깨는 비신사 행위까지 감수해가면서 러시아가 마음을 바꾼 것은 일본이 150억달러 상당의 경제지원 및 차관 제공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모스크바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악한 동부 러시아 개발에 대한 숙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 정부의 속내를 일본이 간파한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중국과 일본이 국운을 걸고 송유관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반면 우리는 수수방관으로 일관, 에너지 안보가 위협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원유 확보에 대한 노력은 전혀 없고 단지 한국가스공사가 이르쿠츠크의 천연가스에 대해 중국을 거쳐 국내로 들여 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현재 타당성 조사만 겨우 마친 상태여서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러시아와의 교역 확대 필수

이러한 에너지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 러시아 경협이 근시안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따갑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3년 3·4분기까지 한국의 대 러시아 수출은 12억4,64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2.8%나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0.8%에 불과한 것이다. 같은 기간 러시아로부터의 수입도 전년대비 13% 늘어난 20억850만달러에 그쳐,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22번째 교역국에 불과하다. 러시아 경제의 규모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대 러시아 교역 확대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얘기다.

미하일 레온타이비치 티타렌코 러시아 과학원 극동연구소장은 "한국의 대기업들은 아직 러시아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 미비 등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고 시장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면도 있겠지만 좀 더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큰 틀의 전략적인 접근 필요

안보나 국제관계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러시아를 단순히 거대 시장으로만 보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큰 틀의 정치 경제적 파트너로 삼는 적극적 자세에 대한 주문도 많다.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 노다리 시모니야 소장은 "중국과 일본은 국가주석과 총리가 직접 나서 러시아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유독 한국이 이러한 논의에서 빠져 있는 점은 이해가 안 된다"며 "한국은 단순히 상품만 파는 데 열중할 게 아니라 러시아와 함께 좀 더 큰 틀의 경제협력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단순히 러시아 연구원을 몇 명 고용해 기술개발에 활용하는 차원을 벗어나 우주항공이나 군사분야 같은 대형 경제협력 프로젝트들도 추진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광희 KOTRA 모스크바관장도 "러시아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기회로 중국과는 달리 우리 경제와 완벽한 보완 관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윈-윈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며 "단순한 상품 위주의 교역에서 탈피, 러시아의 기초과학을 활용한 산업협력 강화, 러시아의 자원과 우리의 기술 및 자본을 결합한 대규모 프로젝트 추진 등의 다양한 경제 협력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러시아속 한국기업

러시아에서 보드카를 마신 뒤 해장을 하고 싶다면 노점상이나 슈퍼마켓으로 가 '도시락'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된다.

한국야쿠르트의 즉석라면 도시락은 우리나라에선 구경도 하기 힘들지만 러시아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제품이다. 러시아 즉석라면 시장의 80%를 장악한 도시락의 지난해 수출량은 2억5,000만개로 추산되고 있다. 금액으로는 650억원에 이른다.

지난 1986년 출시된 도시락은 부산항을 드나들던 보따리 상인들에 의해 처음 러시아에 알려져 인기를 끌었다. 상대적으로 매운 맛이 약한 것이 국내에선 실패요인이었으나 러시아인의 입맛에는 맞았던 것. 한국야쿠르트는 97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업소를 개설하며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 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바람에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한국야쿠르트는 오히려 99년 모스크바에도 사무소를 개설하며 수출지역을 우랄산맥 서쪽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판매량은 2000년부터 다시 급증세로 돌아섰다. 한국야쿠르트는 조만간 모스크바에서 현지 공장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현지 생산에 돌입한다.

반면 한국수출입은행은 근시안적 접근으로 대박의 기회를 놓친 케이스다. 수출입은행이 모스크바사무소를 개설한 것은 1991년. 그러나 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사무소를 폐쇄하고 철수했다. 이후 러시아 경제는 급속도로 회복됐고 수출입 관련 금융 수요가 잇따르자 수출입은행은 2002년11월 다시 현지 사무소를 개설했다.

문제는 처음 개설 당시 장기 임대 조건으로 싸게 빌렸던 사무실 공간이 2002년 재개설 때에는 천정부지로 오른 임대료로 무려 10배 이상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한국외국어대 권원순교수는 "최근 러시아 경제가 수직 상승하며 러시아를 향한 '오일러시'가 예상된다"며 "그러나 90년대 초반 러시아 붐이 일면서 아무런 준비없이 진출했던 한국기업들이 결국 다시 빈손으로 철수했던 전철과 일부 기업들의 근시안적인 접근 등은 지양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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