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는 '경제경찰'과 국민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강화하고 고의적 탈세자와 고액 체납자를 엄정히 처벌하겠다." 5일 오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용섭 국세청장이 내놓은 국세청의 올해 목표다. 1999년 9월 세정혁신의 깃발을 높였던 국세청이 올해를 한 단계 올라선 2단계 세정혁신의 해로 삼은 것이다. 이에 따라 최전선에서 24시간 '탈세와의 전쟁'을 치를 국세청 조사조직은 더욱 바쁜 한해를 보내게 됐다. 국세청 조사분야 조사관수는 전국적으로 5,0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조사대상 선정에서부터 집행, 검찰고발까지 세무조사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며 탈세범들과 숨막히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의정부세무서 이훈구(39), 북광주세무서 박기수(52), 중부국세청 조사3국 전석중(48·이상 6급)조사관. 국세청 조사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최고의 '조사통(通) 3인방'이다. 관할지역 기업체들이 이름 석자만 들어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다. 이들은 업계에 독종 중의 '상독종'으로 소문이 나 있다. 지난 해 세무조사 성과만 들춰봐도 왜 그런 말을 듣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 조사관은 의정부 일대에선 '조폭 킬러'로 유명하다. 세무대학 3기로 1985년 국세청에 몸담은 이후 15년간 조사업무에 매달려 온 그는 지난 해 10월 신변의 위협까지 받으면서 의정부내 조직 폭력배들이 운영하는 대형 술집 20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의 활약으로 이 지역 내 최대폭력조직인 '세븐파' 보스 강모(38·구속)씨 등 11명이 조세범처벌법위반(조세포탈)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3∼4차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2∼3명의 조직 폭력배들이 사무실까지 찾아와 '함께 죽자'고 달려들 때는 참 난감하더군요." 그는 "이젠 의정부 일대에선 술 한잔 할 수도 없게 됐다"며 조사관들의 숨은 고충을 토로했다.
박 조사관도 북광주지역에서 '불독'으로 통한다. 한번 물면 탈세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진 결코 놓지 않는다. 71년 9급으로 국세청에 들어온 그는 27년간 조사분야에서만 잔뼈가 굵었다. 지난 해 말 3개월간의 추적조사 끝에 지능적으로 998억원 어치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자료상' 정모씨 등 5명을 적발, 검찰에 고발하고 248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그는 조사관의 자격조건으로 무엇보다 '끝까지 추격하는 악바리 근성'을 꼽고 있다. 박 조사관은 "98일간 밤낮없이 전국 100여 곳의 중소기업과 화물업체를 찾아 다니며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 힘들었다"며 "특히 금융기관에서 9일간 잠복근무를 하면서 확실한 물증을 잡았을 땐 그 동안의 피로가 한 순간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전 조사관도 조사분야 20년 경력의 베테랑. 그는 지난 해 충청권 지역 부동산 투기조사를 하며 아파트 분양권 105건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취득·양도해 양도소득세를 빼돌린 유모씨 등을 검찰에 고발하고 5억9,000여 만원의 세액을 추징했다. 그 역시 이 과정에서 혐의자의 집에서 6일 밤을 지새는 등 끈질긴 집념을 보여줬다.
국세청 조사관은 업무 특성상 국세청의 '핵(核)'이다. 하지만 모두가 선망하는 '꽃'은 아니다. 세목 별로 나눠있던 조사권이 제2 개청으로 조사관에게 집중되면서 업무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기피부서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조사관은 "자료상 조사를 위해 출장 가는 직원들이 7∼8개의 서류 보따리를 들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며 씁쓸해 했다. 이 조사관도 "능력 있는 직원들이 세원관리나 징세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힘든 조사 분야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야 능력 있는 조사관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사관들의 업무 수칙 1순위는 '보안'이다. 옆 조사과에서 동료들이 무슨 조사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각 팀이나 조사관들이 맡은 분야의 조사를 하고 최종적으로 책임자들이 조사의 전체 그림을 그린다.
가끔 터져 나오는 국세청 직원 관련 세무비리 얘기를 꺼내자 이들은 "극히 일부로 간혹 비리관련 기사가 나올 땐 마음이 아프다"며 "99.9%의 조사 공무원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사 도중 잠깐 짬을 내 국세청 기자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던 이들은 "밀린 업무가 산처럼 쌓였다"는 말을 남긴 채 각자 사무실로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 국세청 조사국장
국세청 조사국장은 국세청 조사업무를 총괄하는 수장이다. 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장과 함께 국세청의 3대 요직으로 꼽히고 있을 정도다. 비록 국장급이지만 업무의 성격과 중요도면에서 국세청 차장이나 중부지방청장 등 1급들을 제쳐놓고 국세청을 상징하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대검 중부수장 격인 본청 조사국장은 현재 대구 경북고-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행시 17회의 선두 주자인 최명해(55·사진)국장이 맡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한때 쌍용그룹에 근무했다 뒤늦게 국세청에 투신한 최 국장은 국세청 조사1과장, 국세청 기획관리관, 대구청장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이주석 서울청장의 뒤를 이어 본청 조사국을 책임지고 있다. 작지만 단단하고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인 최 국장은 역대 본청 조사 국장들의 전통을 이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사국장 자리는 향후 청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10년 동안만 해도 8·9대 청장을 지낸 추경석씨가 안무혁 청장 시절 3년3개월간 조사국장을 맡아 최장수 조사국장 기록을 세웠다. 추 청장의 뒤를 이은 10대 임채주 청장도 7대 서영택 청장 시절 조사국장으로 발탁돼 2년 가까이 국세청 조사조직을 진두지휘 했다.
13대 손영래 청장도 안정남 청장 시절 조사국장을 맡아 DJ정부 시절 재벌개혁을 지휘했다. 금융감독위원장을 역임한 이근영씨도 2년8개월동안 조사국장을 지내 국세청에서 2번째로 장수한 인물이다.
/박희정기자
■ 국세청 조사조직
국세청 조사 조직은 전체 인력의 30%에 해당하는 5,000여명으로 구성된 매머드급 조직이다. 1999년 국세청 조직개편을 통해 세무서를 중심으로 세목 별 조직에서 기능별 조직으로 전환하면서 각 세목 별로 분산됐던 조사권을 통폐합, 조사과에 집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사인력도 2배로 늘어나며 현재의 규모로 확대 재편됐다.
본청 조사국은 검찰과 비교하면 대검 중수부에 해당한다. 국세청의 전체적인 조사 방향을 결정하고 전국적으로 주요 정보를 수집·분석해 조사 업무를 총괄·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직접 조사는 하지 않는 것이 검찰과 다른 점이다. 조사국은 조사 1·2·3과와 전산조사과 등 4개과 1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조사1과는 법인세 관련 조사 업무를 총괄한다. 2과는 개인, 3과는 법인의 부동산 및 주식과 관련된 조사업무를 나눠 맡고 있다. 전산 조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최근 전산조사과가 추가로 신설됐다.
1급이 청장을 맡고 있는 서울과 중부국세청 등 6개 지방국세청은 16개 조사국 66개 조사과로 조직돼 있다. 조사인력이 900여명으로 가장 많은 서울청은 4개국으로 조사1국은 법인관련 조사를 담당한다. 지난해 11월 SK해운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손길승 SK그룹 회장을 조사포탈범으로 검찰에 고발한 것도 이 곳이다. 조사2국은 지난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이전가격 탈루를 적발, 32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는 등 법인 및 외국투자기업의 조사를 책임지고 있다. 조사3국은 부동산 투기조사 등 개인 관련 조사를 맡고 있다. 심층조사(특별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조사4국은 검찰로 치면 특수부에 해당한다. 참여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특명반'으로 불릴 정도로 최고 권부의 주문사항을 처리하던 특별 조사조직이었다. DJ정부시절 한진그룹을 비롯, 재벌개혁을 위해 실시한 특별세무조사가 4국의 작품이다.
중부청과 부산청도 3개 조사국으로 조직돼 있으며 조사 1국은 법인 관련 조사를 책임지고 있다. 2국은 개인, 3국은 심층조사를 담당한다. 대구·광주·대전국세청 등 규모가 작은 3개청은 2국체제로 법인과 개인을 나눠 맡고있다. 전국 99개 세무서는 1∼2개의 조사과를 두고 있는데 1과는 법인, 2과는 개인 관련 조사업무를 실시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크게 일반세무조사와 조세범칙조사로 구분된다. 일반세무조사는 조사대상 업체의 업황이나 규모, 거래 형태 등에 따라 추적·통합·긴급·자금출처·금융거래확인 조사 등이 병행되며 형사고발보다는 세금추징이 주목적이다. 반면 조세범칙조사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 세금을 빼돌린 포탈범을 대상으로 해 형사고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법원 심리에서 국세청이 탈세자의 범법 행위를 직접 입증해야 해 조사 담당자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박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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