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및 등록법인들이 주금(株金)을 아예 납입하지도 않고 '유령주식'을 찍어내 시장에 유통시킨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기업에 멋모르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의 주권은 모두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고, 가짜 주식이 대규모로 유통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신뢰도에도 심대한 타격이 우려된다.1만5,000여명, 500억원 피해
금융감독원은 5일 대호, 중앙제지, 동아정기, 모디아 등 4개 기업의 주금 허위 납입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가 1만5,000여명에 달하고 피해 규모는 49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회사별 피해 규모는 대호가 9,000명에 160억원, 동아정기 1,000명에 155억원, 모디아 5,300명에 175억원이고 중앙제지는 신주 상장 직전 허위납입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
금감원 이영호 부원장보는 "정확한 피해자 숫자와 피해 규모를 산출할 수는 없지만 관련 회사의 유상증자 전후 주식 수와 매매 거래 정지 전의 종가, 기존 주주명부 등을 근거로 피해 규모를 추산한 결과 이같이 추정됐다"며 "현재 해당 주식에 대한 거래 정지 등 시장 조치가 내려진 상태이기 때문에 실제 피해 규모는 추정치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원장보는 피해 보상 문제에 대해 "관련 회사들이 감자 등의 자구노력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한 뒤 소액 투자자들의 피해를 보상해 주는 방법과 소액 투자자들이 회사나 불법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식을 인수한 뒤 팔아 차익을 얻은 대주주 등을 상대로 대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회사가 최근 2∼3년 전부터 모두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경영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주식 인수 매각대금을 챙긴 일부 대주주 등은 이미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져 피해 보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허위납입 주식은 '휴지조각'
통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신주를 받은 투자자가 회사계좌에 입금하면 은행이 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회사에 발행해 주고 회사는 이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 뒤 등기서류를 받아 증권거래소나 증권업협회에 내 신주를 상장(등록)시킨다.
하지만 이번에 적발된 4개사의 경우 아예 주금납입보관증명서를 허위로 꾸며 법원에 제출, 등기를 한 뒤 이를 근거로 신주를 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사채업자 등에게서 잠시 돈을 빌려 주금을 납입했다가 즉시 인출하는'가장(假裝) 납입'은 자주 적발됐지만 서류위조를 통한 허위납입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허위납입이 밝혀짐에 따라 해당 주식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더구나 주식은 실물이 발행되지 않기 때문에 유통주식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구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허위납입 이전에 발행된 주식에 투자한 소액주주라도 이런 제도적 맹점 탓에 똑 같은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감독당국 유가증권 관리 '구멍'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26일 대호의 허위납입 정보를 최초로 입수, 2002∼2003년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327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 4개사의 허위납입 사실을 적발해냈다. 금감원은 뒤늦게 주금 허위 납입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금융회사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을 발동해 주금납입보관 증명서의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하기로 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1,000억원대의 가짜 주식이 시장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데도 그동안 아무런 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독당국 역시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유가증권 발행 및 유통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도 "감독 당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고 투자자와 시장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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