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파격 체위, '바람난 가족'의 총체적 외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고난도 작업 솜씨로 2003년 한국영화 에로티시즘의 키워드를 감히 요약하고, 이 자리에선 2004년을 전망해 보려 한다.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은 무리겠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정밀하게 '에로 근사치'를 산출해 보겠다.한국의 대표적 작가영화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김기덕과 홍상수의 신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2월 개봉 예정인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가 선택한 소재는 원조교제의 세계. 유럽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 섹스를 나누는 두 여고생이 있다. 한 여고생이 사고로 죽게 되자, 남은 친구는 죽은 여고생이 거래한 남자들을 찾아 다니고,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그런 행동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잠시 외도(?)했던 김기덕 감독이 다시 거친 영화로 돌아왔다. 홍상수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사진)에서, 두 남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여자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순결의 화신 혹은 섹시한 요부로 기억되는 그녀. 한국 누드집 열풍의 선두 주자였던 성현아가 캐스팅됐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녀는 오래 전부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길 원했다고 한다.
김혜수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에로틱' 심리 드라마 '얼굴 없는 미녀'는 올 여름을 후끈 달아오르게 할 것 같다. 김혜수는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여자로 출연해 농도 짙은 정사 신을 선보일 것이라는 전망. '바람난 가족' 여주인공 역에 캐스팅 되었다가 이런 저런 문제로 중도하차 했던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관객들에겐 희소식일 듯하다.
지난해 개봉할 예정이었다가 미뤄진 '귀여워'에서는 묘한 에로티시즘을 맛볼 수 있을 듯하다. 여주인공은 '생활의 발견'의 예지원. 그는 어느 박수무당(장선우 감독이 이 역을 맡았다!) 가족과 엉겁결에 같이 살게 된다.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모두 다른 3형제와 박수무당 아버지,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까르르' 웃기만 하는 조금은 황당한 여자는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며 공존한다.
김기덕 감독의 '섬'으로 에로틱 이미지의 대표적 배우가 된 서정은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감우성과 만났다. 야성적이고 원초적 느낌의 숲이라는 공간과 거미 이미지의 끈끈함이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데, 서정이 1인2역을 맡았다. 단아한 노부인(선우용녀)을 둘러싸고 주현 김무생 양택조 송재호 등의 배우들이 노익장을 과시하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그다지 에로틱하진 않겠지만 새로운 느낌의 로망스가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는데 개봉 소식은 안 들리는 영화들. 섹스에 대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 30대 유부녀와 고등학생의 사랑을 담은 박철수 감독의 '녹색 의자', 한 남자를 두 남녀(그들은 부부다)가 사랑하는 김응수 감독의 '욕망'.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김형석·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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