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피터팬'/피터팬 "나, 사랑엔 숙맥인가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피터팬'/피터팬 "나, 사랑엔 숙맥인가봐"

입력
2004.01.06 00:00
0 0

프로레슬러가 아닐까 싶은 이름의 P. J. 호건 감독은 재기 넘치는 데뷔작 '뮤리엘의 웨딩'(1994)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1997)으로 재능을 입증한 흥행감독이다. 두 편의 유쾌한 '결혼' 영화만으로도 그의 신작 '피터팬'(Peter Pan)은 기대를 끌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모두 다 아는 피터팬 이야기가 아닌가. '피터팬'은 두 가지 의미에서 지금껏 알던 피터팬을 다시 보게 한다. 로맨틱하고 즐거운 '결혼'영화 전문가답게 호건의 피터팬 이야기에는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가 살아 숨쉰다. 호건 감독은 나이 먹기를 거부하는 피터팬(제레미 섬터)과 이제 막 사춘기에 돌입한 열 세살 짜리 웬디(레이첼 허드우드) 사이의 풋풋한 사랑을 중심 축으로 '피터팬'을 다시 만들었다.사랑에 눈 뜨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저학년용 피터팬 버전인 셈이다. 막 봉오리를 터뜨릴 듯한 웬디는 첫 키스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지만 피터팬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첫사랑이 이루어질 듯 말 듯한 로맨틱한 분위기가 영화 전편에 가득해서 공룡만한 악어나 후크 선장의 위협은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피터팬'은 또한 과연 나이먹지 않고 늘 방학처럼 사는 게 언제까지 즐거울 수 있을까를 묻는다. 후크 선장의 말대로 "어른이되는 건 끔찍한" 일이지만, 피터팬처럼 사는 것도 혹시 지루한 일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다. 아무리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는 모험이라지만 그것도 언제까지나 거듭하면 지겹지 않을까. '피터팬'은 어른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에 서 있는 아이들의 고민을 그럴 듯하게 다룬다.

호건 감독은 더 이상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피터팬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며 환호성을 지르고, 기꺼이 네버랜드 모험에까지 따라 나선 웬디 삼남매는 돌아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영악하게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우린집에 가야 해. 부모님이 우리를 잊기 전에 가야 해"라고 말한다. 무단가출을 한 뒤로 집은 까맣게 잊고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느닷없이 각성을 한 뒤 착한 아이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호건 감독이 마련한 해피 엔딩은 너무 잘 알려진 100년 전 소설 주인공들에겐 잘 어울리지만, 새로운 시대의 관객의 눈엔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피터와 웬디 삼남매의 모험담에 생기가 모자란 듯한 이유가 이것이다. 매력적인 웬디의 캐릭터와 나름대로 진지한 상상력도 뒤로 가면서 흐트러진다. 호주 퀸즈랜드 세트장에 세운 네버랜드는 만족스럽지만 낯선 아역배우와 어른들의 연기는 원작의 재현 이상이랄 게 없는 평범 자체다. 웃음과 풍자로 간을 잘 맞추는 호건답게 아기자기한 웃음을 선사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ILM, 디지털 도메인, WETA 등 세계정상의 특수효과팀이 달라 붙고 1억2,0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대작이지만 비싼 영화처럼 보이진 않는다. 1월16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