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 희망에 부풀고 새로운 설계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새해가 시작된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 이유는 올해가 총선이 있는 정치의 해이기 때문이다.언제부터인가 정치는 우리에게 혐오와 짜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최소한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는 4월까지는 총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사생결단식 이전투구가 기승을 부릴 것이 자명하다는 점에서 올 상반기를 어떻게 정신건강을 유지하며 넘길 것인지 아찔하기만 하다.
우리의 정치라는 것이 원래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최근 한국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정치인들의 양식을 과대평가해 왔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차떼기, 트럭떼기로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결국 정치개혁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채 새해를 맞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초록은 동색이라고 국회는 7명의 비리관련 국회의원들의 체포동의안조차도 부결시키고 말았다. 한 마디로, 국회가 더 이상 국회가 아니라 비리비호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래 가지고 국회가 앞으로 국민들과 행정부에 대해 무슨 권위를 가지고 처신을 할 것인지 한심하기만 하다.
여하튼 국회는 오는 8일 임기국회 회기를 끝으로 다음 임시국회인 2월까지 23일 동안 휴가에 들어간다. 이는 한 편으로는 기쁜 소식이자, 동시에 슬픈 소식이다.
8일부터 휴가에 들어가는 것이 기쁜 이유는 더 이상 비리의원들이 국회 회기를 이유로 검찰의 조사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회를 방탄 삼아 이리저리 피해오다가, 드디어 딱 걸린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국회가 4월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도,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개혁안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회기를 마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국회의 직무유기에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단속권을 오히려 축소하려던 정치권의 음모는 일단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고 하지만,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부패 정치 개혁안은 의원정수와 선거구 논의를 핑계로 아예 논의 자체를 미루어 놓은 상태이다. 의원정수와 선거구 문제 역시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지역구를 오히려 늘리려는 야당과 총선승리에 유리한 중대선거제를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간의 대치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정치개혁을 정치권에 맡겨둘 수 없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들과 민중단체, 학계, 종교계 등이 비상시국회의를 조직하고 농성 등 갖가지 방식을 통해 국회가 더 이상 정쟁을 벌이지 말고 일종의 국민적 합의체로 국회 스스로 구성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의 정치개혁안을 수용하라고 촉구해 왔다. 또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당학회장 등 내로라 하는 정치학자 170여명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며 이례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모두를 외면한 채 국민들의 정치개혁 요구를 오히려 정치개악으로 응답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사회단체들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일어나 8일까지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의 정치개혁안을 국회가 수용해 법제화하도록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시민혁명을 이야기해 논쟁이 된 바 있지만, 정치권이 이번에도 정치개혁을 거부한다면 노 대통령이 의미한 것과는 다른 의미, 즉 낡은 정치권을 향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민혁명이 불가피하다. 선택은 간단하다. 결국, 정치권의 자기개혁이 불가능하다면, 시민혁명에 의한 강제된 정치개혁만이 남은 선택일 뿐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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