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그림으로 세상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것이 카툰이다. 그렇지만 여러 컷과 글로 이루어진 스토리 만화에 비해 독해가 어려워 인기가 덜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특색 있는 카툰집이 잇달아 여러 권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서울 창작만화·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된 카투니스트 4명의 카툰북 시리즈 4권은 날카로운 풍자나 비판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내용을 주로 다뤘다. 짧은 해설을 곁들여 읽기도 쉽다. 40년간 카툰을 그려온 작가 김마정(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씨의 '세상 틈바귀에'는 한국적인 소재를 다룬 카툰 100여 점을 담았다. 깊은 산, 높다란 두 개의 봉우리에 각각 오른 두 사람의 등산객. "야호!" 한 사람이 외치자 그 목소리는 휴대폰을 타고 다른 사람의 귀로 메아리친다. '새로운 세상과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광고 문구를 빗대 덧붙여진 짧은 글이 날카롭지 않아서 좋다. 심청전, 별주부전, 토끼와 거북이 등 옛날 이야기와 화로, 판소리, 금강산도 식후경, 도시락, 신토불이, 온돌, 김장독 등 우리 것을 소재로 현대사회를 풍자했다. 김씨는 "요즘 카툰은 난해한 작품이 적지 않고 독자들도 카툰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서 "그러나 작가와 생각을 같이하는 창의적 상상력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그 카툰은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은향씨의 '통통'은 어린이들을 위한 카툰을 모았다. 주인공인 토끼 통통이와 원숭이 몽이, 모기 윙윙이, 코끼리 끼리, 암토끼 토순이, 기린 구구 등이 등장해 아이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내용을 보여준다. 비오는 날 줄넘기할 때 둥글게 줄로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비를 맞지 않고 즐거워한다거나, 스키를 타고 점프했다가 비행기 창문에 부딪치는 장면, 손오공이 구름 위에서 오줌이 마렵자 달려가는 먹구름 화장실 등 따뜻하고 정겨운 상상력을 볼 수 있다.
젊은 카투니스트 심차섭씨의 '카툰 필'에는 재미있는 표정의 캐릭터와 화려한 색감을 특징으로 하는 기발한 발상의 작품 100여 점이 실려 있다. "자기야 하루 종일 힘들었지." 별이 빛나는 밤 하늘 아래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빨간 신호등과 파란 신호등 속의 두 인물이 사랑을 나눈다. 현대인이 사는 모습을 교통 신호등에 비유한 작가의 발상이 가슴에 와 닿는다. 지난해 11월 전시회를 가진 고경일씨의 '방자한 명상'은 점점 변하고 사라져가는 서울의 일상적 모습을 담았다.
"하늘의 달이 나누어지지 않았으나 사람이 저마다 어리석어 여기저기 물에 비친 달을 보고 꿈을 꿉니다." 구상렬씨의 '목숨 깎아 어디에 쓰시려고?'(샘터 발행)는 카툰과 선(禪)이 만나 조화를 이룬다. 제목 앞에 놓인 '생각하는 만화'라는 문구 그대로 깨끗한 그림과 선적인 내용이 담긴 글이 일상의 때를 씻어주는 듯하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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