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이 차고 넘쳤다. 8,000석의 좌석과 통로는 물론 체육관 바깥에까지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인기 스포츠 경기가 열린 게 아니었다. 한국미술협회 제20대 이사장 선거였다.정치판 뺨치는 미술인들의 과열된 선거 바람은 이미 인사동 화랑가에서 감지됐다. 후보 사무실이 듣지도 못한 'XX미술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생기더니 선거 벽보와 초대형 현수막이 건물을 뒤덮고, 지지자 명단까지 뿌려졌다. 어떤 후보는 전답을 다 팔았다, 어떤 후보는 12, 3억원을 썼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다. 그 돈으로 미협 회원들의 회비를 대납해 선거권을 주고, 관광버스를 대절해 밥 먹여 가며 지방 회원들을 동원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해서 선거에는 119개 미협 전국 지회·지부 회원 2만여 명 가운데 절반이 참여했다.
예총 산하 10개 문화단체 중 전국 회원의 직접 선거로 대표를 뽑는 것은 미협이 유일하다. 세 후보는 연설에서 저마다 이런 선거방식의 개선을 주장했다. "왜 화우(畵友)들이 선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고 얼굴을 붉혀야 합니까!" 하지만 그 외침이나 각종 공약은 공허했다.
왜 기를 쓰고 돈 뿌려가며 선거를 할까. "공모전과 조형물, 두 가지 아니겠어요?" 한 미술인은 말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이 3류로 전락하고, 미협이 각종 국제전 참가와 조형물 심사 통로가 된 것이 직접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본전 뽑으려면 일 저지르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합니까?"
한 후보의 출신 대학과 함께 국내 미술계 양대 인맥을 이루는 다른 대학 출신 미술인을 이날 장충체육관에서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는 어느 화가의 말도 충격적이었다. 이날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이렇게 이권과 학연, 지연에 휘둘렸다는 점에서 미협은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미협 무용론, 나아가 미협 자멸론, 해체론이 그저 나오는 게 아니다.
하종오 문화부 차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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