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실시된 그루지야 대선에서 승리한 미하일 사카쉬빌리(36·사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11월 무혈 시민혁명인 '벨벳 혁명'을 이끈 주역이다.그가 당수로 있는 국민행동당과 민주당의 통합야당 후보로 출마해 90%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다. 그만큼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각료들의 비위 사실을 조목조목 기록한 문서를 폭로하고, 서민들의 주택수리를 직접 거드는 등의 튀는 행동을 하는 그를 두고 일부 언론들은 '부패와 빈곤에 맞서 싸우는 십자군'이라고 치켜 세우고 있다. 한편으로는 권력에 집착하는 대중선동가라는 비난도 따라 다닌다.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사카쉬빌리를 2000년 10월 법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한 것은 그가 축출에 앞장선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다. 셰바르드나제의 두터운 신임으로 후계자로까지 지목됐지만, 정계에 만연한 부패에 염증을 느껴 2002년 장관직을 사퇴했다. 같은 해 국민행동당을 창당하고, 반 정부 운동을 진두지휘 해왔다.
그동안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사카쉬빌리는 4일 "우리의 목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한 발 물러섰다. 붕괴 직전의 경제 재건 고질적인 부패 척결 분리독립을 추진 중인 자치공화국 재통합 등 산적한 난제 해결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방증이다.
사카쉬빌리는 그동안 실용주의적 친 서방 노선을 택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직간접적으로 밝혀 왔다. 이 경우 옛 종주국인 러시아와의 갈등이 또 다른 걸림돌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루지야에서 태어난 사카쉬빌리는 우크라이나, 프랑스에서 대학 교육을 받았고, 미 컬럼비아 대학 로스쿨을 수료했다. 이 때문에 영어 프랑스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네덜란드인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1명을 두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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