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 기본적 자유 위에 세워진 세계를 갈망합니다. 첫째는 세계 각지에서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둘째는 세계 각지에서의 신앙의 자유입니다. 셋째는 세계 각지에서의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넷째는 세계 각지에서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1941년 1월6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가 의회에 보낸 연두교서의 일부다. 그 전해 미국 정치의 전통을 깨고 세 번째로 대통령에 출마한 그는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연합국에 우호적인 자신의 외교 정책을 줄곧 변호했다. 1939년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 유럽 대부분은 이내 독일군의 점령 아래 놓이게 됐으나, 미국은 아직 참전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루스벨트는 선거 운동 기간 중 연합국을 옹호하면서도, 중립에 우호적인 여론을 의식해 미국이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그는 3선 이후 미국을 '민주주의의 병기고'로 묘사하며, 미국의 군수 물자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 영국을 원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63년 전 오늘 루스벨트가 의회에 보낸 교서의 핵심 내용은 영국에 대한 군사 원조의 입법화, 곧 무기대여법의 제안이었다. 그러니까 이 교서에서 거론된 네 가지 자유는 궁극적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구축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다. 루스벨트는 "독재자들이 폭탄으로 창조하려고 하는 전제 정치라는 새 질서에 정반대 되는 도덕적 질서의 구현"을 호소했다. 의회는 두 달 간의 토론 끝에 무기대여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3월11일 정식으로 발효했다. 이로써 영국과 자유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 지원이 시작됐다. 미국이 정식으로 참전한 것은 그 해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이후지만, 사실상의 참전은 이 무기대여법으로 이미 시작된 셈이다.
고종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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