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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화계 읽기](2) 틴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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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화계 읽기](2) 틴파워

입력
200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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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틴에이저'는 더 이상 한국 문화의 소비주체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문화 생산자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 새로운 현상, '틴파워'(10대의 힘)로 뒤흔들린 곳 중의 하나가 출판계였다.글쓰기의 주체를 엄격하고 까다롭게 걸러 온 출판가에서 '예쁜 선물용 그림책'과 '통신어와 이모티콘으로 쓰여진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2년 10월에 나온 카툰 에세이 '파페포포 메모리즈'(홍익출판사 발행)는 출간 2개월 만에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82만부가 팔렸다. 이미숙 홍익출판사 편집장은 "인터넷에 연재된 만화를 단행본으로 내기로 했을 때 눈여겨본 것은 온라인 독자의 움직임이었다. 처음 파페포포 사이트에 들어가 봤을 때 회원 수는 3,000명이었던 게 한 달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대부분 10대인 회원들은 게시판에 곧바로 감상을 올리고, 마음에 드는 글과 그림이 있으면 퍼 가고, 다른 네티즌들에게 퍼뜨린다. 만화를 보고, 즐기고, 알리는 주체인 10대의 반응이 엄청나게 빠르고 민감해서 단행본의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고 이 편집장은 전했다. 최근 출판계의 유행이 된 카툰 에세이 열풍의 진원지가 틴에이저라는 것이다.

'온라인 틴에이저'의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출판물은 인터넷 소설이다. 그 자신이 10대인 귀여니가 인터넷에 연재한 소설이 또래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실제 공간으로 걸어 나왔다. 평범한 여고생이 잘 생긴 남학생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그놈은 멋있었다'(전2권·황매 발행)가 20만부가 팔리는 등 인기를 끌었다.

문화 트렌드를 상품화하는 데 신중한 영화가에서 이 인터넷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 나섰다. 틴에이저의 힘이 거대 자본시장을 움직인 것이다. 올해 상영될 영화 중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은 '그놈은 멋있었다' '내사랑 싸가지' '그녀를 모르면 간첩' 등 7, 8편에 이른다. 지난해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흥행에 성공해 가능성을 비친 것이 올해는 주도적 흐름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예전의 하이틴 로맨스가 어른들이 부여한 판타지라면, 인터넷 소설 원작의 신종 하이틴 로맨스는 10대 자신의 감성을 언어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10대가 자신이 생산과 소비의 주체라고 믿는 것 역시 환상일 수 있다"면서 영화의 경우 발랄한 10대의 감성을 잘 담아내는 장르로 발전할 수도 있고, 수준 낮은 넌센스 코미디의 양산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내다보았다.

인터넷 소설이든 영화로 옮긴 것이든 그것이 틴에이저의 감수성에서 비롯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의 삶은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설과 영화에서 대개 10대 여고생인 주인공들은 킹카 남학생을 사귀거나('그놈은 멋있었다') '싸가지 없는' 대학생과 연애한다('내사랑 싸가지'). 10대가 가상공간에서 만들어내고 퍼뜨린 자신들의 이야기가 출판물로, 영상언어로 탈바꿈하면서, 놀랍게도 10대만의 감성과 생활 방식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감성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가요계에서 틴에이저의 저력을 잘 보여주는 가수는 보아다. 10대인 보아가 낸 두 장의 앨범은 각각 130만 장, 136만 장이 팔렸으며 싱글 12장을 포함해 모두 500만 장이 팔렸다. 기록적인 판매고다. 귀여운 외모를 앞세운 일회성 스타가 아니라 생명력이 강한 가수로 자리 잡아가는 모범적 사례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틴에이저는 그러나 유행에 빠르게 감응하는 만큼 변화에도 빠르게 반응한다. 최근 출판가에서 인터넷 소설의 인기는 주춤하는 쪽이다. 인터넷소설을 냈던 출판사들은 새로운 '베스트셀러 감'을 찾기 위한 모색에 들어갔다. 10대를 타깃으로 한 음반 기획은 일찌감치 줄어 들었고, 최근 등장한 고교생 가수들은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틴에이저는 쉽게 유행에 몰입하고, 또 쉽게 그것에서 빠져 나와 다른 유행으로 옮겨간다.

문화평론가 김동식씨는 이에 대해 "TV와 인터넷 등 영상물이 제시하는 문화의 획일성이 문제"라며 "틴에이저가 문화의 소비 주체로 자리잡았고 생산자로서의 역할도 하기 시작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를 오래 향유하는 방법은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고 평한다. 그는 그러나 "틴에이저가 올 한해 문화 흐름을 주도하게 될 세력이고 그 자체로 문화 코드임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최지향기자 misty@hk.co.kr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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