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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사무라이" 고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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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사무라이" 고이즈미

입력
2004.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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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한 사나이가 팔자(八字)걸음으로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 나타났다. 참배를 마친 그는 비장한 얼굴로 "어느 나라에서나 역사, 전통, 습관은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그것은 일본 사극이나 코미디의 한 장면이 아니다. 2004년 새해 첫날,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전통 존중론'을 편 사람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인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였다.

2001년 총리가 된 후 네 번째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그는 "새해 첫날 신사에 참배하는 일본 전통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차츰 이해해 줄 것이다. 앞으로도 매년 참배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북한도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시민들의 항의시위가 있었다. 아시아는 지금 새해에 신사를 찾는 일본의 전통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는 것인가.

고이즈미의 말은 몰염치한 궤변이다. 아시아는 일본의 애매모호한 역사인식에 대해서 분노하고 우려하는 것이지 전통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칠 줄 모르는 상대에 대한 오랜 분노는 멸시로 바뀌어가고 있다. 고이즈미는 지금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조소의 대상이다.

일본은 그 동안 한국 중국과의 정상회담 등 불가피한 경우에 과거 역사에 대한 유감과 사죄의 뜻을 표시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 "얼마나 더 사과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진심으로 사죄한 자가 망언과 망동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문명사회의 상식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

고이즈미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보수표 결집을 위해 야스쿠니 참배를 활용해 온 그는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 신경을 쓰고 있다. 북한 핵 문제로 한국 중국과의 협조가 긴요하기 때문에 신년 참배로 갈등을 단기화하려 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야스쿠니 참배를 관례화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재무장 분위기를 잡아나가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계산을 감안하더라도 야스쿠니 참배는 경제대국의 총리로서 비참한 선택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한 시대를 휩쓸었던 팽창주의, 군국주의의 전시장이다.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광기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빼앗고 참화를 불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훈의 장소다. 오래 전 야스쿠니 신사를 돌아봤던 나는 그 피비린내와 전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일본이 만일 재무장을 꿈꾼다면 총리 같은 책임 있는 사람이 야스쿠니 신사에 더욱 더 발걸음도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은 주변국의 양해 없이는 일본의 재무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없이 강조돼 온 것이지만 일본은 같은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예를 잊지 말아야 한다.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가 독일의 재무장을 지지했던 것은 독일이 분명하고 깨끗한 과거청산을 통해 새 나라로 거듭났다는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 50년이 지난 오늘까지 주변국에 그런 확신을 심지 못했다.

일본 내에서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다. 야당은 "개인의 신조를 위해 국익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난했고, 평화유족회 등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와 사람들에게 다시 깊은 상처를 주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새해 첫날 사무라이처럼, 사극배우처럼 야스쿠니에 나타난 고이즈미 총리는 온 세계에 일본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경제대국이 된지는 오래지만 진정한 일류국가가 되기는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전통복장에 비장한 표정을 짓고 과거로 걸어가는 총리의 모습에서 일본의 미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세계가 뛰고 있는 21세기에 이런 모습을 본다는 것은 희극적이기 까지 하다. 고이즈미의 희극은 당리당략에 얽매어 미래를 보지 못하는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리라 믿는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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