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정치불신이 극에 달해 현역의원이라는 점이 선거에서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정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무소속 후보가 어부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일보 여론조사는 현역의원을 찍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57.2%로 나왔고, 무소속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답변이 11.8%였다.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기존정당이 20% 아래의 지지도를 놓고 도토리 키재기식 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에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응답도 18.9%나 됐다. 다른 언론의 여론조사 추이도 비슷하다.■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정치판에서 4·15 총선결과를 예측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임에 틀림 없다. 현역의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각 당의 공천물갈이로 보완할 수 있고, 50%선에 육박하는 무당파 유권자들은 선택의 날이 가까워지면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가 세밑에 체포동의안을 무더기로 부결시키고, 선거구와 의원정수를 가지고 밥그릇싸움을 계속하는 한 국민들은 갈수록 정당을 외면할 게 틀림없다. 각 당이 정치개혁의 하나로 도입한 후보 경선제는 상당수의 경선불복자가 무소속 출마에 나서는 유혹에 빠지게 할 것이다. 후보 경선제는 결과에 대한 승복을 전제로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난 해의 지자체 선거에서는 물론,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수많은 불복 사례를 보아왔다.
■ 최근의 무소속 당선자는 1992년 21명, 1996년 16명으로 제법 많았지만 2000년에는 5명에 불과했다. 92년과 96년에 무소속 당선자가 많았던 것은 3당 합당에 따른 이합집산과 민주당 분당 등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정치불신이 이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227개의 지역구(현재기준) 중 상당수의 무소속 진출을 점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무소속 변수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소속이 약진할 경우 정국구도에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다당제로 선거가 치러지면서 무소속 당선자가 많아지면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제1당이 원내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정당간 합종연횡이 가능하다. 지역구도가 공고한 영남이나 호남 등에서의 무소속 당선은 우리정치의 고질인 지역감정해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기존정당이 서로 상대만을 보며 으르렁거리는 진흙밭 싸움을 하고 있는 틈새에서 무소속 변수가 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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