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벽두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하고, 또 만나는 이들에게도 복을 빌어 준다. 어떤 이들은 올해 일어날 일들이 궁금하여 토정비결을 보기도 하고 점집에 가기도 한다.미래가 궁금한 것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전쟁, 테러, 지진,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이 다발하고, 국내외 경제·정치상황의 변화가 심한 경우라면 장래에 대한 불안은 더 커진다.
이런 불안심리 때문에 사람들은 내일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사람들에게 이목을 집중한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경제위기를 1996년에 미리 경고했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또,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했을 때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권의 충돌을 1993년에 예언했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인사들은 객관적 사실과 자신의 전문지식,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깊은 통찰력으로 미래 일을 예측한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 '점치는' 일이 일상화했다는 느낌이다. 유력 일간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오늘의 운세'를 알려주고 있으며, 점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대문짝만한 광고도 심심찮게 게재한다. 현대에 와서 역술가로 대접 받는 이들의 광고문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만만치 않은 광고비를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상당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온라인세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웬만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라면 운세나 사주를 보는 코너가 없는 곳이 없다.
한편으로는 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전근대적 점치기가, 그것도 젊은 세대에서 만연하는 현상을 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은 나쁜 것이 아니다. 돌발사태에 대비하여 손실을 줄일 수 있고, 남이 모르는 기회를 포착하여 이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점치기는 미래예측방법으로서 신뢰할 수 없을 뿐더러, 더 나아가 우리를 무책임한 운명론에 빠지게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책임져야 할 일도 없다는 심리를 갖게 한다.
서구문명의 기초가 된 기독교의 성서를 보면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예언을 자세히 보면 운명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예언은 항상 'if'와 'if not'의 두 가지 길을 제시함으로써 예언을 받는 자의 행동과 책임을 강조한다.
예컨대,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 공의를 이루면 번영의 축복이 임할 것이나, 그렇지 않고 뇌물 받기 좋아하고 고아와 과부를 착취하여 불의를 행한다면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발생하여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식이다. 따라서 예언을 받은 백성들이 취하는 행동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전적인 책임은 예언을 받은 백성들에게 있다. 그러나 점보는 백성들에게는 그런 책임의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사회는 미래를 예측할 때 흔히 점친다는 표현을 자연스레 사용한다. 일례로, 주식분석가가 "내일은 주가상승이 점쳐 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일 주가는 시장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그에 따른 투자의사결정에 따라 상승 또는 하락할 것이다. 주가는 점치듯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묻지 마' 주식투자가 유행하는 것도 우리사회에 무의식적으로 깔려있는 무책임한 점치기 문화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인류역사가 지속되는 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할 것이고, 이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려는 인류의 노력도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이에 따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백성들은 번영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백성들은 망할 것이다.
정 운 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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