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현실의 법정에서 증거와 씨름을 한다면 역사가는 역사의 법정에서 사료와 씨름을 한다. 사료와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 역사가로서 사료를 고문해서라도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한 랑케의 심정이 때로는 이해가 된다.자료가 충분히 남아 있는데 상충하는 내용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그나마 행복한 고민이다. 그 경우에는 자료 비판이나 방증 자료를 활용해 어느 자료가 진실을 말하는지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발목을 잡는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료가 없거나 결정적 부분만 빠져 있는 부작위의 공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증거 인멸과 사실의 은폐,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예 애초부터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삼남민란으로 불리는 1862년의 농민항쟁은 조선왕조의 명운을 재촉한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것은 삼정문란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삼정(三政)은 18·19세기 조선에서 재정의 뼈대를 이룬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을 통칭하는데 삼정문란은 그 경영의 파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세(田稅)의 부과 징수를 근간으로 하는 전정의 성패는 토지 대장의 정확한 작성, 농사의 풍흉을 조사 결정하는 연분(年分)에 달려 있었지만, 지방 수령과 아전의 부정부패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정부의 재정 고갈과 민란으로 나타났다. 당시 토호와 관리의 탐오는 극에 달해서 실제 경작지를 토지대장에서 누락시키고 그 땅에서 나오는 세금을 착복하는 은결(隱結), 세금을 법정액 이상으로 받아 초과분을 착복하는 도결(都結)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부패가 자행됐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조세대장, 토지대장 등 기록을 체계적으로 누락, 은닉, 왜곡함으로써 가능했다. 현재의 상황에 빗대어 얘기한다면 정치권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이 기업의 분식회계를 가져오고, 그 부담이 투자자와 일반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식이다.
이태 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성노예, 강제노동 등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한 일본인 학자가 일본군 군대위안부 제도 운영과 일본 기업의 관련성을 한 콘돔 생산기업의 사례를 통해 밝힌 것을 보았다.
이 논문은 일본 정부의 콘돔 배급체계를 통해 군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입 여부를 분석함으로써 군대 위안부 문제의 중요한 쟁점의 하나를 해명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논문이 가능했던 것은 기업활동의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일본 사회는 기록을 통해 최소한 반성의 근거를 남기고 있고, 그런 사회는 과거로부터 배울 여지가 있는 셈이다.
새해다. 모든 사람이 희망을 얘기한다. 하지만 희망은 그것을 가꾸려고 노력하는 사회와 개인만이 보듬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대선자금을 둘러싼 검찰과 정치권의 숨바꼭질을 보건대 이제 정치헌금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도록 규정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전달하고 전달 받는 사람들에게 정당기록관과 기업기록관을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겠는가.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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