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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창간 50돌 본보서 기자 41년째 장명수 이사 - 故 신 봉 조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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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창간 50돌 본보서 기자 41년째 장명수 이사 - 故 신 봉 조 교장

입력
2004.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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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은 한국일보에서 입사 41년째로 현역 최고참 기자인 장명수(62) 이사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특별한 인연들을 만났을까. 하지만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연은 기자가 되기 훨씬 전인 10대 소녀 시절 만났던 선생님이다. 기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평생에 걸쳐 그 꿈을 이루며 살 수 있게 해 준 분이기 때문이다.장 이사가 신봉조 교장(1992년 타계)을 처음 만난 것은 54년 이화여중 입학식 날. 교지 '거울'도 그 날 처음 봤다. 전쟁 직후라 종이가 극히 귀했지만 신 교장이 언커크(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회)에서 종이를 지원 받아 당시 중·고교 교지로는 드물게 20∼30쪽 분량으로 매주 발행되던 최고의 교지였다. 읽을 것이 변변치 않던 때라 교지가 나오는 날은 학교가 쥐 죽은 듯 조용했을 정도였다. 교지를 본 여중생 장명수는 '거울'의 기자가 되고 싶었다.

소녀 시절 한 때의 꿈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기자가 평생의 업이 된 것은 전적으로 신 교장의 가르침 때문이다. 신 교장은 틈만 나면 학생들에게 "너희들 하나하나가 남들에게 없는 재주를 지닌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라"고 가르쳤다. "정숙하라"는 얘기는 한번 한 적 없었고 공부만을 앞세우지 않아 학생들이 누가 반에서 1등인지 모를 정도였다. 대신 작은 재주라도 성과를 내면 조회 시간마다 전교생을 모아 '승리의 노래'를 불러 주도록 했다. 부산 피란 중 "한국이 세계에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것은 예술과 체육 뿐"이라며 서울예고를 세울 정도로 남다른 선견지명이 있던 신 교장이었다.

누구에게도 희망이 없던 시절, 아이들에게 칭찬보다 꾸중이 앞섰던 그 때, 신 교장의 칭찬과 격려는 이화 학생들에게 당시 여학생으로서는 드물게 희망과 꿈을 갖게 했다. 장 이사는 "그 분 덕분에 내가 가진 재주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일찍 갈 길을 정하지 않았더라면 평범했던 내가 지금까지 기자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한다.

고등학교(이화여고)에 진학한 장명수는 '거울' 기자가 되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고 할 정도로 교지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졸업 후에는 이화여대 신방과에 1회로 입학했고 63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거울'의 경험은 그에게 최초의 기자수업이 된 셈이다. 장 이사는 '거울' 기자 동안 신 교장에게서 가끔 "재미있는 글을 썼더구나"하는 칭찬을 들은 것 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신 교장은 장 이사를 특별한 제자로 가슴에 담아두었던 것 같다. 82년 '장명수 칼럼'의 전신인 '여기자 칼럼'을 시작했을 때 칼럼니스트가 되었다고 누구보다 기뻐했던 것도 신 교장이었다. 어느날 한국일보사 입구에서 신 교장을 마주쳤던 일은 지금도 가슴 뭉클한 기억이다. 곁에 있던 신문 판매 담당자가 "저 노인이 장기자의 칼럼이 실린 날이면 와서 저렇게 신문을 한 뭉치씩 사간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제자의 글이 좋다 싶으면 직접 신문을 사 아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던 것이다.

신 교장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우연히 길에서 본 마지막 만남 때 장 이사가 인사를 하니 "한국일보에 있다구요? 거기 우리 제자 장명수라고, 훌륭한 칼럼니스트가 있지요"하면서 가물가물해진 정신으로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 이사는 차마 "제가 장명수예요, 선생님"이라고 하지 못했다. 99년 일간지 최초의 여사장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

장 이사는 나이가 들수록 신 교장 생각이 자주 난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 누구나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 준 것,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청렴한 모습이었던 것까지. "비록 선생님은 모든 제자를 기억하지 못해도 제자들에게는 특별한 인연이 될 수 있는 것이 선생님 아닐까요." 장 이사 자신도 칼럼의 어느 한 구절로 인해 독자들에게 특별한 인연으로 기억되는 기자로 남고 싶다고 한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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