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관련하여 한국 고대사학자, 특히 고구려사를 전공하는 이들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동북공정 문제가 우리 사회에 불거지게 된 것은 바로 만주 지안(集安)과 환런(桓仁)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중국이 자국의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가입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자기 영토 안에 있는 고대 유적을 자국의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다. 현재 우리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우리 민족의 고대 유적을 중국의 이름으로 관리하는 것을 수수 방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학계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나서 올 6월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중국 이름으로 고구려 유적이 등재되는 것을 막겠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얼마 전 평양 등 북한 일원을 2주간 다니면서 북한이 고대 문화유산을 중국보다 더 잘 보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 고구려 유적을 북한 단독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중국에서 방해할 뿐더러 유네스코 자체에서 북한 단독 등재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은 중국이 관리하고, 평양에 있는 고구려 유적은 북한이 관리하여 양국이 동시에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 학계는 만주 지역의 고대 역사가 우리 역사임을 고증하는 작업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며칠 전 만난 중국 학자는 동북공정이 순수하게 학술적인 측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지방을 새롭게 부흥시키고 한반도 통일 이후에 대비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준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도 정치력을 발휘해 중국 정부와 협상을 벌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 외교관계 차원에서 따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계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중장기적인 계획 하에 만주사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나 자기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인은 이에 도무지 관심을 주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일차적으로 국책 연구소를 정부 차원에서 설립해 전문 연구원과 전문 학자를 배치하여 만주지역의 청동기문화를 포함한 고조선의 문화 그리고 고구려, 발해 및 고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와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냉정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해답은 한국고대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에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관련하여 즉흥적이고 흥분된 반응이 양국 관계나 서술내용 시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보아왔다. 어느 사회에나 극단적인 민족주의 시각에서 자국사를 엮으려는 집단이 있다. 중국이 만주지역 고대사를 자국사로 해석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제에 우리 학계나 정부 차원에서 그동안 국사 교육을 얼마나 홀시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초·중·고 교육과정에 독립된 역사 교과가 없고 사회과목에 편입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국어와 국사 교육은 필수 교양과목으로 정규 교과에서 가르쳐야 한다. 역사 과목이 독립되어 있지 못하고 사회과에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사 교육, 한국 고대사 되찾기를 부르짖은들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땅은 비록 중국에 소속되어 있지만 역사만 찾으면 그 땅은 우리 것이 된다. 만일 역사를 잃어버린다면 땅덩어리는 물론 그 민족마저 사라져버린다는 역사의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송 호 정 한국교원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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