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런 러펠 쉘 지음 이원봉 옮김 바다출판사·1만원
'1조 달러 짜리 질병'으로 불리는 비만의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오랫동안 비만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버릇의 결과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이 책은 먹는 습관이 심리적 요인 뿐만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며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여러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네덜란드 서부지역에는 대 기아가 닥쳤다. 네덜란드 망명정부와 독일군이 작전상 이유로 교통과 식량 수송을 막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친 빵 두 조각, 감자 두개와 생 사탕무로 하루를 살았다. 하루 섭취 열량이 2월에는 500㎉, 그 후에는 400㎉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천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겉보기로는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중년으로 성장한 1970년대 컬럼비아 대학 연구진은 어머니가 임신기간 첫 6개월 동안 기아를 겪은 사람들 중 80%가 성인이 되어 비만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자궁 속에서의 마지막 3개월이나, 태어나서 첫 5개월 동안 기아를 겪은 사람들은 이보다 비만 가능성이 40% 가량 낮았다. 연구팀은 임신 첫 6개월 동안의 결핍 때문에 평생 동안 허기를 느끼게 됐다는 이론을 세웠다.
책은 이 같은 여러 사례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이 '비만 유전자'를 발견해 내는 과정을 흥미 있게 그리고 있다.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제프리 프리드만, 비만생리학 전문가인 루디 라이블 등이 미국 록펠러대에서 동물실험을 통해 포만인자 '렙틴'의 존재를 발견했는데, 렙틴을 투여한 결과 체지방이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러나 다른 사례들에서는 렙틴이 충분한데도 비만이 발생했다. 유전자가 너무도 쉽게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책은 비만의 환경적 요인 가운데 거대 식품산업의 존재를 특별히 지적하고 있다. 1990년에서 1998년 사이 미국에서만 11만6,000개의 새로운 식품이 선을 보였다. 이들의 목표는 되도록 사람들의 음식소비를 늘리는 것이었다.
모든 공공건물에는 탄산음료 자동판매기가 있고,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패스트푸드점이 있다. 역시 수십 억 달러의 비디오게임, 컴퓨터, 텔레비전 산업은 음식을 재미있고 신나는 것으로 인식시켜 주었다. 이들 산업은 미국인의 체중을 불어나게 함으로써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만은 개인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압력의 문제이고, 그런 압력을 행사하는 기관의 권력의 문제"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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