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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혜석 평전 내 무덤에 꽃 한 송이 꽂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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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혜석 평전 내 무덤에 꽃 한 송이 꽂아주오

입력
2004.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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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 지음 중앙 M& B 발행·1만5,000원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이나 도쿄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1934년에 당시 으뜸가는 대중지였던 '삼천리'에실린,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 정월 나혜석(1896∼1948)의 '이혼고백장'의 한 구절이다. 그는 남편과 이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재산 분할권과 자녀 양육권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4남매의 자녀를 둔 여성이 남편과 이혼에 이르게 된 심정을 공개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그러나 나혜석은 당당했다. 그는 "에미를 원망하지 말고 사회 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고외쳤다.

서양 화가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여성주의자로서 불꽃 같았던 나혜석. 그에게는 늘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정작 세인들은 나혜석이 빼어난 재능을 지닌 예술가로서 일구어낸 업적보다는 그의 삶에서 들려오는 추문과 스캔들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그가 일궈낸 업적은 화려한 것이었다. 1918년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한 나혜석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제1회부터 제5회까지 입선하며 재능을 뽐냈다. 1921년 3월 경성일보사 건물 안의 내청각에서 한국 여성화가로는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뿐이 아니다. 1918년 '경희', '정순'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해 소설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여성 해방론자요 자유주의자였던 개화기 신여성 나혜석을 받아들이기에 세상의 질서는 너무 높고 두터웠다. 결혼 생활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 나혜석은 1920년 나이가 열 살이나 위인 변호사 김우영(金雨英)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가 1926년부터 3년 간 세계일주에 나서면서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파리를 방문한 나혜석이 천도교 지도자였던 최린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 이후 나혜석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행려병자로 1948년 12월10일, 원효로의 서울시립 자혜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여성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최근 스캔들에 묻혔던 나혜석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망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평전만 해도 미술평론가 이구열씨가 쓴 '에미는선각자였느니라'부터, 여성 문학사가인 이상경 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내놓은 평전 '나혜석' (한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 '나혜석 평전'의의미는 남다르다.

저자에게 먼저 평전 출판 제의를 했고, 자료 제공과 교정 작업에도 참여했던 정월 나혜석기념사업회 유동준 회장은 "기존에 나온 평전 중 나혜석의 삶을 가장 온전하게 복원해낸 책"이라고평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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