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1월3일 하와이 구라(救癩) 운동으로 유명한 벨기에 선교사 다미앵이 루뱅 근교에서 태어났다. 1889년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몰(沒). 알바니아계 유고 사람이었던 마더 테레사가 인도를 자신의 두 번째 조국으로 삼았듯, 그보다 한 세기 전에 벨기에 사람 파더 다미앵은 하와이를 자신의 두 번째 조국으로 삼았다. 다미앵이 사제 서품을 받은 것도 호놀룰루에서였다. 그 시절 하와이는 아직 미국에 병합되기 전으로, 카메하메하5세가 다스리고 있었다.하와이에서 나병이 처음 관찰된 것은 다미앵이 태어나기 다섯 해 전인 1835년이었다. 다미앵이 픽푸스 수도회의 일원으로 호놀룰루에 도착한 이듬해인 1865년 카메하메하5세는 나병 환자들을 외딴 섬에 격리시키는 법안에 서명했고, 다시 그 이듬해 1월 남자 환자 아홉 명과 여자 환자 세 명을 태운 배가 몰로카이 섬의 나환자촌으로 떠나면서 나환자들의 본격적 격리가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몰로카이 섬은 한국의 소록도 같은 곳이었다. 다미앵 신부는 1873년 이 곳에서의 사목을 자원했고, 16년 뒤 나병에 감염돼 선종할 때까지 나환자들의 구호에 헌신했다. 그래서 마더 테레사가 '캘커타의 성녀'로 불리기 한 세기 전에, 파더 다미앵은 '몰로카이의 성자'로 불렸다. 그러나 벨기에 정부는 다미앵이 죽은 뒤 한 세대가 지난 1936년 그의 유해를 안트베르펜으로 옮겼다. 벨기에에서는 1964년 생전의 다미앵 신부가 속했던 픽푸스 수도회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나병 퇴치를 위한 벨기에 다미앵 재단(DFB)이 설립됐다.
하와이에서 나환자 격리법이 폐지된 것은 1969년에 와서다. 그 뒤 새로 발병한 환자들은 통원 치료를 받게 됐다. 1980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나환자촌이 있던 몰로카이 섬의 칼로파파에 국립역사공원을 조성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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