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지진 사태가 미국·이란 관계를 새로 짜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이 최근 이란 지원 제한 규정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1979년 이래 단교 상태에 있는 양국이 화해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미국이 이란에 고위급 특사단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긍정적 신호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모하메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인도적 지원과 관계 개선은 별개'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큰 흐름은 '적대 관계 완화' 쪽이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2일 "미국 정부가 미국 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엘리자베스 돌 상원의원(공화당)과 부시 대통령 가족 등으로 구성된 인도적 지원 대표단을 이란에 보내기 위해 이란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는 12월31일 "미국 기업과 개인은 이란 구호활동을 위해 이란이나 다른 비정부기구(NGO) 등에 직접 자금을 기부할 수 있다"며 "이 조치는 12월27일부터 발효됐으며 3개월 간 유효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1979년 테헤란에서 발생한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의 미국인 인질 억류사태 이후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이란에 대한 자금 지원 제한 조치를 취했었다.
카말 카라지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의 조치에 대해 "일시적이긴 하지만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항구적이고 전면적으로 제재가 해제되면 양국이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12월29일 자바드 자리프 유엔주재 이란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자리프 대사는 이를 수용했다. 이에 대해 하타미 이란 대통령도 사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일 "이란 지원은 지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타미 이란 대통령도 미국의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이란의 대량살상무기 완전 포기와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이루는 게 금년 대선 전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생포와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얻어낸 데 이어 이란에서도 성과를 거둔다면 금상첨화가 될 수 있다. 이란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이란이 12월18일 핵확산 금지조약(NPT) 부속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관계개선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은 일단 제거됐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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