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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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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향

입력
2004.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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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영 지음 소담출판사 발행·전5권 각권 8,000원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언론인 백우영(60)씨가 첫 장편 '자향'(子香)을 출간했다. 조선 중종 기묘사화의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삼은 대하 역사 소설이다. 집안이 몰락해 노비가 될 운명에 처한 열여섯 살 처녀 자향의 열흘 간의 도망 길과 궁중의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이 함께 얽힌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에서 양반 출신인 자향이 쫓기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은 제대로 이름을 갖추지 못한 서민들이다. 봇짐장수 가을나무, 국밥집 중노미 항슬과 동무들, 보강무당 등 자향의 도망 길에 동행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은 뜨거운 정과 굳은 의리로 넘친다. 작가는 여기에다 우두머리 함지박귀, 냄새도사 노린내 등 자향을 쫓는 포졸들에게서도 인간적 고뇌와 따뜻한 심성을 찾아낸다. "이 세상은 양심보다는 요령이, 청렴보다는 타협이 더 잘 통한다고 생각하네"라는 포졸의 부르짖음에서 낮은 사람들의 울분이, "임금의 마음, 백성은 오로지 임금의 마음 하나를 믿고 사는 것이다!"라는 환관의 훈시에서 보통 사람들의 소망이 드러난다.

단 열흘 간에 벌어진 일을 5권의 두툼한 분량으로 엮은 이야기 솜씨도 주목할 만하거니와,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도 소홀히 하지 않는 꼼꼼한 묘사에서 작가가 들인 공을 가늠할 수 있다. 가령 도피 첫날 자향이 꾸는 꿈이 그렇다. '꽃들이 천지에 널려 있다. 울긋불긋한 꽃 사이에서 자향은 묘한 춤을 본다. 쥘부채를 흔들며 춤을 추는 여자는 무당이요, 자향은 그 무당의 흉내를 내며 같이 춤을 추고 있다. 가라 가라, 세월아 한 많은 세월아! 너는 옥황상제의 시녀로 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왔나니! 외침이 처절하여 가슴이 섬칫할 지경이다.'

역사소설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씌어진 당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조선 시대가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인재 등용의 한계라고 지적한 어느 사학자의 말씀을 존중하여 하층민, 즉 '저들의 세상'을 괘념하였다. 양반 세계보다는 상민과 가난한 양민으로 이뤄진 '저들의 세상'에 더 아름다움이 있고 애틋한 깊이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향은 '저들의 세상'이 자신이 속한 세상임을 알게 됐다. 그것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실은 우리 모두와 함께 사는 사람들임을 일깨우는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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