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 정사(正史) 외우느라 고생했으니 방학에는 좀 '시시한 역사'에 관심 가져보면 어떨까? 선조들의 생활사, 풍속사를 다룬 책이 여럿이다. 어떻게 보면 하잘 것 없는 이런 역사에 그러나 선조의 생생한 삶이 녹아 있다. 읽는 재미도 그만이다. 지난 해 출간된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지음·푸른역사 발행)이 대표적이다.이 책에는 평생 술과 도박으로 살다 간 탕자, 기생의 기둥서방으로 유흥가를 주물렀던 왈짜, 투전에 날 새는 줄 몰랐던 도박꾼, 수백 명씩 무리를 이뤄 관청을 습격하고 재물을 털던 도적떼 등 공식 기록에서는 자취조차 흐릿한 사람들이 왁자지껄 걸어나온다.
군자의 나라를 자처하던 조선에서 고상하게만 비치던 양반들의 추한 모습도 들춰낸다. 과거장에서 시험 잘 보려고, 또 답안지 빨리 내려고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양반들이 무뢰배까지 동원해 몸싸움을 벌였다. 주먹질 발길질까지 난무했다. 답안을 대신 써주는 전문가까지 버젓이 시험장에 무사통과했다.
'오렌지족' 별감 이야기도 흥미롭다. 별감은 임금 바로 옆에서 왕명을 전달하고 왕이 쓸 벼루며 붓을 챙기고 궐문을 단속하던 하위직. 그들이 온갖 사치를 다 부려 옷치장하고 기생과 악사 등 장안의 연예인은 죄다 불러 춤과 노래로 놀이판을 벌이던 풍경이 생생하다.
그림을 통해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한국의 미 특강'(오주석 지음·솔 발행), 1930년대 서울 모습을 사진과 함께 들려주는 '내가 자란 서울'(어효선 글, 한영수 사진·대원사 발행) 등도 있다. 생활사는 아니지만 고구려 역사 현장을 10여 차례 현지 답사해 생생하게 복원한 '서길수 교수의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사계절 발행)도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 읽어볼 만하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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