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고속철도(KTX) 시대가 열린다. 우리나라는 일본 프랑스 독일 스페인에 이어 세계 5번째 고속철도 보유국이 된다. 철도 역사 105년만에 시작되는 고속철도시대는 단순히 속도가 시속 140㎞에서 300㎞로 빨라지는 것 이상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이재붕 고속철도건설기획단장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바꿔놓는 큰 충격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실현된 '1일 생활권'이 30여년만에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져 사회·경제적 변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전국이 반나절 생활권
서울 강남의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김모씨가 부산 출장길에 오른다. 오전 9시 사무실을 나서 서울역으로 향한 뒤 시속 300㎞의 열차에 몸을 맡긴 지 2시간40분만에 부산역에 도착, 회의 장소인 벡스코에 닿은 시간은 낮 12시45분. 오후 1시부터 2시간동안 회의에 참석한 뒤 서울 사무실로 돌아오니 오후 6시45분이다.
고속철도가 개통되는 4월 이후 이 같은 당일 출장은 일상사가 된다. 현재 새마을호로 서울에서 4시간10분 거리인 부산은 2시간 40분, 3시간 52분 거리인 광주는 2시간 37분이면 도착한다. 서울역에서 천안·아산역까지 34분, 대전도 49분이면 닿는다.
2010년 경부고속철도가 완전 개통되면 서울―부산은 1시간 56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서울과 부산을 오고 가는 데 항공기(공항 이동시간 포함)보다도 1시간 20여분이 적게 걸린다.
탈서울 열풍 불까
60년대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이 개통된 일본의 경우 도쿄(東京)로부터 200㎞ 거리까지로 통근권이 확대됐다. 95년 조에츠(上越) 도호쿠(東北)노선이 도쿄에 연결되면서 신칸센을 이용하는 통근자는 88년 6,162명에서 2000년 4만1,556명으로 늘어났다. 프랑스도 테제베(TGV) 개통 이후 파리 출퇴근권이 150㎞ 거리의 지방도시로 넓어졌다.
고속철도 개통이 가져올 가장 획기적인 생활혁명은 바로 이 같은 통근권의 확대. 서울에서 150㎞ 떨어진 대전도 출퇴근권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때문에 수도권 인구의 지방 분산과 이에 따른 지방도시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대전 천안 등이 새로운 주거지로 부상하고, 기업 공공기관 대학 등의 지방 이전도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이 고속철도역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다시피 했던 것도 이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외국에서도 고속철도 개통을 계기로 지역도시의 부흥을 이뤄낸 사례가 적지 않다. 일본은 신칸센이 통과하는 중소도시의 경우 인구가 70∼85년 10% 이상, 기업설립이 72∼85년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2년 12월 신칸센이 연장개통된 아오모리(靑森)현은 여행객이 이전보다 1.5배 늘어나는 등 지역경제가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파리 남서쪽 180㎞에 위치한 인구 2만2,000명의 프랑스 소도시 뱅돔은 TGV역 주변에 테크노파크를 건설해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골프장 등 레저단지도 집중 조성, 1,5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연구원 조남건 연구위원은 "고속철도의 비싼 요금 수준, 천안 등 통근가능권 지역의 비싼 주택가격, 고속철도의 수송한계 때문에 단기적으로 인구의 지방 이전은 적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히려 서울과 지방 도시의 접근성이 커지면서 수도권의 집중화가 초래되리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고속철도의 경제적 효과
고속철도 건설의 배경에는 전체 인구의 73%가 집중된 경부축의 교통·물류난을 완화하는 것도 있었다. 건교부에 따르면 고속철도가 개통될 경우 서울―부산 철도여객은 3.4배 늘어나게 된다. 또 기존 철도여객을 고속철도가 흡수하고 난 여유를 화물수송으로 전환, 컨테이너 수송도 연간 39만개에서 300만개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도로교통 혼잡 해소 등까지 감안한 경제적 효과는 연간 1조8,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70년대 고속도로 등장 이후 아성을 빼앗긴 철도의 르네상스도 점쳐진다. 교통개발연구원은 경부고속철도 영향권에 있는 노선의 항공기 이용객은 5∼6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부산 대구 대전 등 중장거리 고속도로 이용자의 40%도 고속철도로 바꿔 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초기열차는 佛모델… 47호부터 한국형
최고 시속이 300㎞를 넘는 고속열차는 첨단기술의 집약체이다.
4월 개통과 동시에 투입될 20량 편성의 46개 고속열차는 프랑스 알스톰사로부터 수입한 'KTX'. 이 가운데 최초의 12개는 프랑스에서 완제품을 도입했으나 13호부터는 프랑스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전동차 제작업체 (주)로템사 등 국내 100여개 업체가 만들어냈다. 국산화율은 점차 높아져 마지막 46호 열차는 99%에 이른다.
고속으로 주행하면서도 진동이나 소음으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첨단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차량 운전자가 육안 등 감각으로 운전할 수 있는 한계속도인 시속 200㎞를 넘기 때문에 자동열차제어장치 중앙열차통제시스템 등 첨단 컴퓨터시스템으로 열차의 운행을 제어한다. 4월 1차 개통 이후 투입될 47호 열차부터는 전적으로 우리 기술로 개발, 제작되는 한국형 고속전철(G7고속철)이다. 9월 시험 주행에 성공한 G7고속철은 KTX보다 최고 시속이 50㎞ 빠르다.
● 고속철 남은 일정
천안―대전 시험선 구간의 첫 삽을 뜬 이후 12년간의 역사(役事) 끝에 4월 경부고속철도가 선보이지만 이는 절반의 완성에 불과하다. 대구―부산 구간은 기존 선로를 전철화, 고속철도와 기존철도가 접합된 형식으로 1단계 개통을 하는 것이다. 물론 1단계 개통만으로도 시속 300㎞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이 전체 409.8㎞ 가운데 221㎞에 이른다.
경부고속철도의 완전개통은 대구―경주―부산 구간(130.4㎞)의 고속 신선 공사가 끝나는 2010년에 이뤄진다. 총사업비 18조4,358억원 가운데 1단계에 들어간 12조7,377억원을 뺀 나머지가 이때까지 계속 투입된다. 완전개통시 고속열차는 대부분의 구간을 시속 300㎞ 이상으로 달려 서울―부산을 1시간56분에 주파하게 된다.
경부고속철도 1차 개통과 동시에 호남선에도 고속열차가 투입된다. 서대전―목포 구간은 기존 선로를 전철화해 이용하며 이후 신선을 건설, 2015년 완전 개통한다. 고속철도 경부선 오송역을 분기점으로 목포까지 새 노선 건설을 검토하고 있는데 아직 신선 노선은 확정되지 않았다.
건설교통부는 내년초 경부고속철도 사업계획을 수정할 방침이다. 2단계 사업 구간 중 대전·대구 도심통과구간을 지상화할지, 중간역을 추가할지 등 매듭지어야 할 과제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북 오송과 경북 김천·구미, 울산 등에 고속철도역 추가설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정치권 및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의 결정이 앞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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