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예일대 석좌교수는 향후 10년 사이 동아시아에서 전개될 변혁으로 남북한의 대타협 및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동맹을 꼽았다. 그는 이 두개의 결정적 타협이 세계 무대에서 아시아의 부상을 이끌며 미국의 쇠퇴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러스틴 교수에게서 향후 세계질서와 2004년 국제정세의 전망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12월29일 그가 겨울 학기동안 집필을 위해 머물고 있는 파리의 개인 연구소에서 있었다.대담 :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지난해 세계는 이라크 전쟁, 중동 사태, 북한 핵, 그리고 도처에서 터진 테러 등으로 요동쳤다. 2004년의 세계정세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미국 정부 인사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온 관심을 쏟고 있어 혼란스런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정책을 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올해 말까지는 북한이나 이란 시리아 등에 대해 심각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정부는 지금 지역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라크에서는 오히려 혼란이 커지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극도로 불안하다. 북한 핵 협상에서도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아주 불안한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2004년엔 동아시아는 정치적으로 아주 조용하게 지낼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그 후에도 그런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은 아니다. "
―2004년이 지나면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말인가.
"우선 경제적 사정이 아주 불안하다. 현재 성장세의 거품 경제는 미국의 군사적 케인즈니즘 즉, 거대한 지출 구조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구조는 본질적으로는 중국 일본 한국 같은 나라로부터의 자본 유입에 의존하는데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이 국가들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들은 한편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러의 붕괴를 원치 않지만 값이 떨어지는 달러에 투자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세계 경제의 안정에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유로도 점점 강해지면서 달러화를 대체하는 기축통화가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동아시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나.
"1년 내의 전망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10년이라면 달라진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남북한 등 4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기는 하지만 대세는 서로 다른 3국과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하려는 쪽으로 가고 있다. 향후 10년 내 두개의 큰 타협 국면이 생기는데 하나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이뤄진다. 현재로서는 제한적인 통일이나마 이뤄질 수 있는 조건들을 상상하기가 아주 어렵지만 한국의 민족주의는 매우 강하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변화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냐의 문제는 남과 북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직결돼 있다. 다른 결정적인 타협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뤄진다. 이 두 나라도 서로를 두려워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미래가 실질적인 경제적 협력을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동아시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결코 힘이 빠지고 있는 미국 다음의 2인자 자리에 머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그런 움직임을 보고만 있겠는가.
"미국은 그런 타협 모두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 결과는 세계 무대에서 강력한 반대자의 출현 가능성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움직임을 늦추는 게 부시 정부의 정책이다. 그러나 두개의 타협을 완성하려는 구조적인 압력이 아주 강하다. 나는 다음 10년 사이 그 실현을 보게 될 것임을 예견한다. 두개의 한국사이에서 무언가가 해결되고 나면 그것은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동맹 같은 것을 촉진할 것이다. 통일 한국이 둘 사이의 미묘한 교량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체포 이후 이라크 치안유지 및 재건에 상당한 자신감을 찾고 있는 것 아닌가.
"지난 3주간의 상황은 좋아진 게 아니라 더 악화한 것이다. 미국이 후세인을 잡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라크인의 저항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부시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은 후세인의 생포가 미국의 점령에 반대하지만 후세인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마도 시아파 지역에서 더 강력한 저항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생포가 미국에 도움이 될까? 그것은 마치 옛 소련의 붕괴가 미국에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고 오히려 미국을 약화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들에게 도전했던 사람을 붙잡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 있겠지만 지정학의 세계에서 기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런 기분은 저항이 계속되면 시들해진다. 6개월 후면 사람들은 후세인을 잊고, 그는 역사 속에 녹게 된다.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고통은 계속 남지만."
―유럽 국가들이 이라크 부채 탕감에 동의하면서 유엔 결의안 승인문제 이후 보였던 미국과의 갈등이 치유될 조짐을 보이는데.
"부시 정부의 매파들은 전통적인 동맹국들이 미국의 군사적 힘의 과시에 반응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다. 이제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미국이 점점 힘겹게 다뤄야 할 3축이 됐다. 얼마 전까지 그들이 그렇게 연대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런 갈등은 이라크 부채탕감 문제의 해결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또 역사상 처음으로 캐나다가 가장 가까운 두 동맹국인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데 뒷발을 질질 끌고 있는 형국을 보라. 일반 대중들이 파병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이후 세계는 보이지 않은 안개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역사의 단계에서 우리 시대의 혼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재앙의 길에 들어선 것인가.
"세계체제의 무질서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적 이슈는 문명 대 야만이 아니다. 그 근저에는 현 세계체제의 위기와 앞으로 어떤 세계체제를 구축하려는가를 둘러싼 투쟁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미국인과 이슬람교도의 대립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의 비전을 위한 싸움이다. 9·11은 바로 장기적으로 진행될 이런 투쟁의 작은 일화로 볼 수 있다. 어떤 신질서가 들어설 것인가를 두고 향후 20년, 30년, 50년 동안 대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현재로는 의문부호이며 불확실한 상황이다."
―9·11이후 그런 투쟁의 한 축인 부시 정부가 세계 재편을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미국 정부는 1970년대부터 2001년 9월까지, 즉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까지 세계체제 하에서 미국의 힘의 구조적 쇠퇴를 늦추려는 의도를 갖고 대외정책을 입안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동맹 강화, 핵 확산 방지, 후진국에 대한 수출지향적 세계화 요구 등 3가지 측면으로 전개됐다. 이런 정책 중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각각은 부분적으로 성공한 측면이 있다. 9·11 이후 부시 정부의 매파들은 갑자기 반쯤 비어있는 유리잔에 주목했다. 실제로는 반쯤 채워져 있는데도 말이다."
―부시 정부의 매파들이 나머지 반을 채우려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나머지 반잔의 물마저 버리고 있다. 그들의 대외정책은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힘이 서서히 빠져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미국의 힘의 쇠락을 가져온 이전 정부의 정책을 경멸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정부들의 정책에 대해서까지 실망한 나머지 그들이 직접 외교정책의 주도권을 휘둘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엄청난 군사력의 시위가 미국이 해야 할 전부라고 여기고 있다. 적대적인 국가에만 위력을 보이는 게 아니다. 주저하고 의심하는 동맹국들에게까지 미국을 따르라고 을러대고 있다. 그래야만 다시 세계의 운전석에 앉을 수 있다고 보는 건데 이런 정책은 파국을 부르는 재앙일 뿐이다."
―최근 가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발표나 이란의 핵 사찰 수용은 매파들의 채찍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먼저 가다피가 미국과 4년 동안 협상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클린턴 정부 때부터 시작해 후세인 체포 전에 마무리된 협상이다. 문제는 가다피가 왜 그렇게 나왔느냐는 것인데, 그는 핵 무기를 만들 능력을 갖지 못했다. 또 경제의 부정적 측면을 감안하면 개발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리비아는 작고 약한 나라다. 이란은 얘기가 다르다. 이란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 외교적 압력 때문에 조금 버리는 체 하면서 달래는 형국이다. 지금 이란에서는 핵 보유를 두고 두 그룹이 싸우고 있다. 군사대국이고 핵무기를 만들 인력도 있다. 그들은 파키스탄 인도 러시아, 그리고 이라크 점령 미군, 이스라엘 등 핵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이란은 중동에서 이미 정치적·군사적 중요 역할을 하기로 작정했다. 그들이 핵 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어떨까.
"북한도 마찬가지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핵 강국이 북한을 에워싸고 있다. 북한 정권은 경제적으로 강력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강경하지 않으면 버티는 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그 정권은 권력을 방어하는 유일한 수단은 핵무기라고 판단할 것이다."
―지난 20년간 미국 헤게모니의 퇴조를 주장했고, 최근의 저서 '미국의 쇠퇴(The Decline of American Power)'에서도 독수리의 추락을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 이라크 전쟁에서 향후에도 절대적 힘으로 군림할 것임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미국이 추락하고 있다는 점을 누구도 쉽게 믿지 않지만 이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측이 매파다. 그들은 제국적 힘을 휘두르지 않을 경우 미국이 점점 더 주변화할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1970년 이래로 세계적 파워로서의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9·11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신의 국민조차 보호하지 못할 정도로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패권 전략을 위한 유일한 무기가 군사력뿐이라는 데 미국의 불행이 있다. 군사력이 미국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1945년 이후 세 개의 큰 전쟁 중 베트남전은 미국의 패배로 끝났고, 한국전과 1차 걸프전은 무승부였다. 적어도 세계 최강국이 빛나는 기록으로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조용히 시드는 것을 배우든가 아니면 지금의 매파들처럼 거기에 저항하다 점진적인 쇠락을 오히려 급속도로 위험한 추락으로 바꾸든지 하는 선택만 남았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번졌던 반미 감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반미감정은 강한 자에 대한 분노라는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시 정부가 문화적 불쾌감의 정서를 심각한 무언가로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부시 정부 하에서 미국은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비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문화적 현상이 아니며 자기이해와 직결돼 있다. 물론 누군가가 자기를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좋아할 리 없다. 미국도 다른 사람들이 반미주의 입장을 취하면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다."
―부시 정부의 중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 내부는 물론 우파들로부터도 반대에 직면했는데도 그를 절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의 게임 법칙은 가능한 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권력을 이전하는 것을 늦추고 국가가 세워지더라도 이스라엘 영토에 의해 나눠지는, 작은 천 조각 같은 국가로 만들어 통제하기 쉽도록 하는 것이다. 야세르 아라파트와 그의 과도정부는 무너지기 직전이고, 아마 6개월을 못 가 하마스나 알 아크사로 대체될지 모른다. 이 그룹들은 두개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양측은 무제한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 과도정부에 너희들이 나쁜 조건을 지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일방적으로 더 나쁜 조건을 강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현실은 사실 그 반대다. 샤론이 지금 팔레스타인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나 그의 후임자는 나중에 더 나쁜 조건을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올해는 미국의 대선이 치러지는 해다. 후세인 체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재선 전망이 밝아보이는데.
"미국 선거는 휘발성의 게임이다. 지난해 11월까지 부시에게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던 상황이 다소 호전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11개월 동안 부시가 걱정해야 할 3가지 변수가 있다. 이라크에서 무질서가 계속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폭력 사태가 더 심각하게 전개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세 번째는 먼저 지적한 대로 달러의 심각한 붕괴 가능성이다. 달러 문제에 대한 많은 글은 터무니가 없다. 약한 달러가 수출을 증대하고 제조업의 일자리를 보존하도록 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는 미국의 세계 경제력의 핵심요소 중 하나다. 오늘날 다른 나라들은 더 이상 미국의 재정적자를 메울 만큼 충분하게 미국의 채권 구매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지출을 심각하게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정부가 힘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3개월 뒤면 민주당 후보가 가시화할 것이다. 나는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때쯤이면 부시의 재선 전망이 다시 시들어지기 시작할지 모른다."
/파리에서 ksi8101@hk.co.kr
■ 월러스틴 누구인가
이매뉴얼 월러스틴(74·사진) 예일대 석좌교수는 지금 대표적 저서인 '근대세계체제(Modern World -System)'의 제4권을 집필중이다. 기자가 파리 시내 인류과학연구소 빌딩의 2평 남짓한 개인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는 자신이 창안한 세계체제론에 화룡점정을 찍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이 곳에서 겨울나기를 한 뒤 3월 말쯤 예일대로 돌아갈 예정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찰하는 연구의 대미를 완성할 수 있을지는 월러스틴 교수 자신도 모른다. 그는 "계속 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월러스틴 교수가 1974년 근대세계체제 1권을 발표했을 때 그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16세기 자본주의 태동과 역사적 전개를 유럽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 경제적 측면에서 파악한 이 책이 출간되자 세계의 사회과학계는 아프리카 지역연구자로 알려져 있던 월러스틴을 정치경제학계의 석학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역사 인식의 뒤집기는 그의 저술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월러스틴 교수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을 통해 1989년 사회주의 붕괴 후 자본주의 승리를 외쳤던 우파들을 환상을 먹는 무리라고 규정했다. 대신 그는 사회주의 붕괴야말로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해체의 위기에 처한 징표라고 해석했다.
그는 자본주의도 역사 속의 한 체제라고 규정했다. 때문에 그 수명이 다하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그는 1970년 초부터 자본주의는 미국 헤게모니의 쇠락과 함께 위기를 맞았으며,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질서 창출을 위한 이행기라고 보았다.
그의 이런 비판적 관점은 그가 30년을 두고 천착해온 또 다른 영역, 즉 미국 때리기 작업과 연결된다. 그는 많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추락하는 미국 파워의 본질을 파헤치는 '행동하는 반골'이다. 그에겐 미국은 더 이상 비상하는 독수리가 아니다. 빠르게 영락하는, 그래서 매파들이 그 하강 속도를 늦추기 위해 더욱 더 안간힘을 쓰는 제국의 말기적 현상이야말로 미국의 현 실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좌파적 인터넷 매체 '제트매거진'(www.zmag.org)이나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 홈페이지(http://fbc.binghamton.edu)에 9·11 사태와 이라크 전쟁 등에 대한 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글을 올릴 때마다 인기가 폭주한다. 역사학자 브로델과의 인연을 기려 1976년 자신이 창립한 페르낭 브로델 센터는 장기적 시각에서 세계체제분석을 적용하는 연구기관이자 미국판 반체제 운동의 산실인 셈이다.
1930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월러스틴 교수는 1951년 컬럼비아 대 졸업 후 이 대학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1958년부터 모교에서 가르치다 1968년 학생 소요 사태에 연루돼 1971년 캐나다 맥길대로 떠났다. 1976년부터 뉴욕 주립대(빙햄튼) 석좌교수로 지내다 지난해 예일대로 옮겼다. 1994∼96년에는 세계사회학회(JSA)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세계체제 1, 2, 3' '역사적 자본주의'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반체제운동' '이행의 시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등이 있다. 그의 저서는 각국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으며, 백낙청 강만길 등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자신의 저서가 한국에서 몇 권이나 출판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컴퓨터를 뒤져 "11권"이라고 답했다.
/파리=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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