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폐교 미술관 운동장에서마음껏 뛰놀던 다람쥐를 보고 온 날,
한 달 동안 가둬 기른 우리 집 다롱이를
베란다에 풀어주었습니다.
베란다는 금세 다롱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침 햇살 한 움큼씩 쥐어 주던 해님도
거실을 기웃거리며 웃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오신 어느 날
산짐승은 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다롱이를 뒷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저 들꽃처럼 바람처럼 너울너울 살라며
기도하고 풀어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람쥐꼬리 닮은 억새들이 손짓하며 달려들었지만
단숨에 뿌리치고 뛰었습니다.
다롱이가 떠난 며칠 후
베란다 화분마다 해바라기 씨앗이
소복하게 싹을 틔웠습니다.
먹이를 줄 때마다 조금씩 묻어 둔
다롱이의 겨우살이 식량이었나 봅니다.
다롱이가 떠난 그 자리에
다롱이의 꿈들이 고물고물 흙을 뚫고 나와
하나씩 음표를 세우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동시/심사평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크게 늘었다. 좋은 현상이다. 다양한 전자 매체에 눌려 위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동시가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듯해서 반가웠다. 응모된 작품의 수준도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된 듯 일정 단계에는 올라 있었다. 전체 작품의 경향을 보면 구어체적인 것과 산문 형태의 동시가 많이 응모됐다. 그러나 아직도 동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곱게만 여겨서, 그저 아름답게만 나타내려는 작품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가 하면 소재가 새롭지 못하거나 상투적인 말과 생각을 늘어놓아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작품도 있었다.
예선을 거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시골버스’(정은정), ‘땡감나무 일기’(유지송), ‘첫눈 오는 날 쓴 편지’(이해완), ‘된장 담그기’(이현주), ‘새벽’(윤영선), ‘눈 내린 거리’(고은산), ‘다롱이의 꿈’(이옥근) 등 7편이었다. 이들 작품들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정은정씨의 작품은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 놓았으나 주제가 선명하지 못했다. 유지송씨의 작품은 시적 감성을 잘 녹여 놓아서 매우 서정적이었다. 그러면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영호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이 참 좋았으나, 생각을 응축시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해완씨의 작품은 이미지도 선명하고 상황 전개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점이 좋았다. 그러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구절이 있었다. 이현주씨와 윤영선씨의 작품은 시적 바탕은 가장 튼튼했으나 동심 쪽에 무게를 두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고, 고은산씨의 작품은 시적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가장 높았지만 내용이 신선하지 못해 밀리게 되었다.
결국 이옥근씨의 ‘다롱이의 꿈’을 당선작으로 올리는 데 이견이 없었다. 표현이 조금 산문적이어서 시적 긴장감은 덜 하지만,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따뜻한 마음이 잘 녹아있었다. 다람쥐를 떠나보낸 과정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것도 좋았지만, 다롱이의 꿈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솜씨가 높이 인정되었다. 함께 보내온 다른 다섯 편의 작품도 일정한 수준을 지니고 있어서 당선작으로 올리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심사위원=노원호 이상희
동시/이옥근씨 인터뷰
“우리 가족은 밥 얘기보다 글 얘기를 많이 한다. 아내와 나는 글을 쓴 뒤에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내용이 이해할 만한지, 잘 모르는 단어가 있는지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감상에 귀를 기울인다.” 동시 부문 당선자 이옥근(46)씨는 “내 문학 선생님은 아내와 세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그의 문단 선배다.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된 아내는 문학에 관심을 가져온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함께 창작 공부를 하자고 권했다. 국어 교사로 한때 시인을 꿈꿨던 이씨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만나는 아이들과 어울려 동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춘문예에 도전한 지 3년 만에 동시 시인이 됐다.
당선작 ‘다롱이의 꿈’은 가족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다. 거북이, 햄스터 등 유난히 애완동물을 많이 키우는 그의 가족은 3년 전 겨울 다람쥐 한 마리를 맡게 됐다. 산짐승은 늦게 돌려보내면 살아 남기 쉽지 않다는 외할머니 말씀에, 가족들은 고민 끝에 다람쥐를 산으로 보내기로 정했다.
다람쥐가 떠난 뒤 화분에서 해바라기 싹이 올라온 것을 보고, 다람쥐가 겨우살이 준비로 해바라기 씨를 모았나 보다 싶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이야기가 정직하고 소박한 한 편의 동시가 됐다. 생활 속 소재가 무엇보다 진솔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울린다는 믿음에서 쓰여졌다.
20리 길을 걸어 학교를 다닌 ‘외로운 산골 소년’이었다는 이씨는 “중학교 때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산문이 실린 교지가 가장 귀한 보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왜 글을 안 쓰느냐거 묻곤 했다. 그 친구들에게 들려줄 기쁜 소식”이라고 활짝 웃었다. 함께 공부한 아내도 올해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됐다. 이씨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깨끗한 눈으로 바라보고, 시로 쓰고 싶다”며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1958년 전북 순창 출생 ▦전주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2~2000년 구례여중ㆍ여수여중 등 근무 ▦2000년 9월~현재 여천중 근무
/김지영기자 kimjy@hk.co.kr
동시/이옥근씨 당선소감
넘기엔 큰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신춘문예라는 이름의 열병을 앓았습니다. 불혹을 넘긴 이 길목에서 만난 당선 소식은 나를 더욱 기쁨으로 전율케 합니다.
전화를 받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말만 되뇌었습니다. 이렇게 큰 영광이 예고도 없이 밀려오니, 그 기쁨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한동안 정지된 시간 뒤에 가슴 시린 유년 시절과 어머니, 그리고 교사로서 발령을 받고 설레던 마음으로 만난 제자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보다 먼저 신춘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고 늘 미안해 하던 아내, 첫 독자가 되어 내 시심을 일궈준 우리 아이들 한솔, 대솔, 참솔이. 그 동안 교육 현장에서 만났던 소중한 선후배 선생님들, 여수의 문우들도 빠른 영상으로 스쳐갔습니다.
나에게 글쓰기는 행복이었습니다. 학교일과 세상일에 힘들어 어깨가 쳐질 때도 글을 생각하면 저절로 신이 났습니다. 동시가 더 어려운 장르라며, 제대로 시를 공부하고 동시를 시작하라던 선배들의 말을 습작기간 동안 항상 뇌리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아동문학은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휴머니즘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한국일보사와 심사위원님. 정말 고맙습니다. 욕되지 않게 좋은 작품으로 답하겠습니다.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동시를 쓰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꿈을 안겨주고, 어른들에게는 사람 살이의 순수함을 일깨워주는 샘물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중학교 때 교내 백일장대회에서 얻은 장원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던 고삐가 되었듯이, 나도 이제 학생들에게 그런 희망을 나눠주렵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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