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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부패의 전사들]<1> 총리실 합동점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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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부패의 전사들]<1> 총리실 합동점검반

입력
200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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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합동점검반입니다. 들고 계신 가방 좀 보여주시죠."지난해 11월 4일 오전 11시20분께 경기 남양주시청 야외주차장. 국무총리실 합동점검반 K사무관 등 2명이 김모(45) 건설과장을 불러 세웠다.

김 과장이 조금 전 민원인으로부터 받은 보석함을 승용차 트렁크 안에 있던 손가방에 막 집어넣으려던 순간이었다. 가방 속의 1,300여만원의 현금과 수표를 확인한 K사무관은 곧바로 김 과장으로부터 금품수수를 시인하는 '확인서'를 받아내 합동점검반 사무실로 팩스를 보냈다. 김 과장이 아파트 개발업자들의 편의를 봐주고 뒷돈을 챙긴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일주일간의 미행과 잠복 끝에 수뢰현장을 적발해낸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직사회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국무총리 산하 정부합동점검반이 정보를 토대로 한 '타깃 감찰'과 '적발 즉시 수사기관 고발'이라는 원칙을 세워놓고 전례 없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합동점검반 활동의 근간은 광범위한 정보 수집. 이 때문에 사무실 한 켠에 보관된 '블랙리스트'는 보물 1호다. 전국에 산재한 '잠재적 비위공무원'의 리스트가 입력돼 있고, 이들이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 어느 곳을 선호하는지 등은 물론 주량과 음주 습관, 출퇴근 시간 등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2002년 12월 금품수수 사실이 적발돼 구속된 해양경찰청 이모 차장의 경우는 술집 여사장과의 외도에 대한 첩보가 발단이었다.

지난해 10월 업무관련자들로부터 억대의 축의금을 받은 식약청 장모 국장, 비슷한 때에 민원인으로부터 500만원이 든 봉투를 받는 현장이 적발된 서초구청 김모 국장 등도 블랙리스트가 관리하던 인물들이다.

매일같이 현장을 누비는 단속요원들은 나름의 활동 노하우를 갖고 있다. 미행시에는 항상 여벌의 옷을 준비하고 모자, 운동화, 선글라스를 활용하기도 한다. 청탁이나 압력이 들어오면 "이미 보고가 끝났다"는 준비된 답변만을 하고, 신분증을 제시할 때는 엄지손가락으로 이름을 가린다.

비위 공무원이 식당에 들어가면 신발 개수부터 파악한 뒤 옆방을 통해 들어선다. 어느 건물이든 전체적인 구조와 사무실 배치, CCTV의 위치부터 먼저 확인한다.

뇌물을 주는 사람은 비위공무원을 만나기 전에 항상 들고 온 돈봉투의 속을 확인한다는 공식도 경험으로 터득했다. 단속요원 J사무관은 지난해 6월 경기도내 모 지자체 A과장의 사무실 문 앞에서 돈봉투를 확인한 후 들어가는 민원인을 뒤따라가 금품수수 현장을 포착했다.

합동점검반의 지난해 비리 적발건수는 모두 200여건. L감사관은 "하도급 비리가 매번 발생하는데 공직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무원과 업자간의 먹이사슬을 끊는 것이야 말로 합동점검반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도 많다. 지난해 8월 동료들과 차량 3대를 이용해 건교부 4급 직원 B씨를 뒤쫓던 P사무관은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시내를 배회하던 B씨가 일순간 중앙선을 무시하며 U턴했고, 뒤따라 U턴하던 P사무관의 승용차가 마주오던 트럭과 부딪힐 뻔한 것. P사무관은 "그 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떨린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해 7월에는 강원지역 모 지자체 고위간부의 책상 서랍을 확인하려던 요원이 몸싸움을 벌이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도 있었다.

단속요원들은 명절이나 연말연시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다. 평소에도 새벽 1∼2시는 되어야 귀가하는데다 지방 출장도 잦다.

감찰활동에 생활리듬을 맞추다 보면 보통 오전 10시 이후에나 집을 나선다는 J사무관은 "출근길에 이웃을 만나면 괜히 실직자로 오해 받을까 봐 움츠러들 때도 있다"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합동단속반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조정실 구본영 조사심의관은 "수뢰 건수가 줄어드는 반면 액수는 커지는 추세"라면서 "4월 총선 때까지는 감찰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합동점검반 구성·임무

합동점검반은 직제상 국무조정실 내 조사심의관실에 소속돼 있지만 사실상 정부 내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총리 직속기구다. 1989년 사회정화위원회가 해체되면서 공직감찰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총리 직속으로 구성된 '합동특감반'이 전신이며 94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조실 조사심의관을 반장으로 조사심의관실 직원 7명과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원 행자부 법무부 등에서 2년간 파견 나온 공무원 등 모두 3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일상적인 공직감찰 및 비위자료 수집, 건설·소방·금융분야의 구조적 부조리 실태점검 등 크게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한다.

공직기강 관계장관회의와 각 부처 감사관회의를 주재하고 부처별 감사업무 추진실태도 평가해 총리에게 보고한다. 특히 '사직동팀' 해체 이후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감시기능도 흡수했다. 자체 수사권이 없지만 광범위한 정보 수집 후 직접 현장을 누비는 비공개 암행감찰로 '암행어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정부종합청사 별관 5층에 독립된 공간을 확보한 합동점검반은 지난 해 10월 이후 총선까지를 겨냥, 50여명으로 증원해 10개 팀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부패행위를 적발하면 해당 부처에 통보하던 관례와 달리 수사기관에 직접 사건을 넘기는 비중을 늘렸다.

99년 식약청 안전국장의 사무실 캐비닛에서 뇌물로 받은 현금 2,800만원을, 2002년에는 해양경찰청 차장 사무실에서 인사청탁 명목으로 받은 현금 2,100만원과 동양화 9점 등을 적발해냈다. 지난해 10월 이후 적발된 비위 공무원은 서초구청 도시관리국장 등 16명으로 알려졌지만 비공개 건수를 포함하면 50여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정대기자

■ 유충열 총괄기획과장

합동점검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조사심의관실 유충열 총괄기획과장은 "총선을 앞두고 적잖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사퇴, 행정공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만큼 이를 해소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새해 계획을 밝혔다.

유 과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적발된 비위사실을 검·경에 수사 의뢰하는 비중을 높인 것에 대해 "비위 공무원에 대해 해당 부처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 풍토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거를 의식한 단체장들이 징계를 꺼리고 있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부방위 등과의 업무 중복 논란에 대해 그는 "주된 관심사가 다른데다 사정 실무협의회가 있어 업무 중복은 거의 없다"며 "같은 업무라도 여러 측면에서 검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유 과장은 "공직사회 선후배의 비리를 적발해내는 일이라 인간적인 갈등이 적지 않고 원래 소속된 부처 동료와의 관계 설정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애로점을 밝혔다. "상급자 입장에서는 고생하는 만큼 충분히 대우해 주지 못해 부하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수뢰현장이 적발됐던 서초구청 김모 국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것에 대해 그는 "불구속이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양정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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