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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고대史 전쟁]<1> 아,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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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고대史 전쟁]<1> 아, 고구려!

입력
200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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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넣기 위해 체계적 연구 작업에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 논쟁이 불붙었다. 한국일보는 1일부터 고구려, 나아가 고조선과 발해의 역사가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의 논리는 무엇인지, 그들이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짚어보는 기획물을 매주 1회(화요일자) 연재한다. 이 기획은 올 6월 말 세계문화유산 지정 여부가 결정될 중국의 고구려 유적, 북한의 고구려 벽화고분 실태도 함께 조명한다. /편집자 주

아, 고구려!

그 북방의 역사는 항상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깊은 혼(魂)과 신성성의 역사다. 그 고구려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중국은 그 고구려라는 이름의 심오한 역사적 시간, 그 시간의 깊은 비의(秘儀)를 도적질하려 한다. 애당초 고구려가 자기들 땅에 세워졌다는 것이고, 고구려는 독립 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지방 정권에 불과하며, 고구려 민족은 중국 고대의 한 갈래 민족일 뿐 따로 떨어진 조선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隋)·당(唐)과 고구려의 전쟁은 중국 국내 전쟁, 즉 내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이름의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입한 일대 프로젝트의 내용이 그것이다.

중국인들은 왜 이와 같이 영적 생성의 시간을 착취하고 인간 생명의 정체성을 약탈하려고 하는 것일까? 첫째, 옛 중화(中華·중국제일주의)적 세계 질서의 재현을 원하고 이를 현실화할 명분을 얻기 위함이다.

둘째, 주변 국가에 대한 통제력 강화 및 만주 지역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이다. 즉 현재에 이르러 더욱 결속력이 강화된 남북한 혹은 미래의 통일 한국이 만주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거나 영향력을 강화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아직 통일 한국의 가능성이 요원하지만 남북 우리 민족의 내면적 삶의 생성적 시간으로서의 실존적 요구나 이미 우리 민족정신에 깊이 각인된 역사의식, 그리고 남북을 함께 밀고 나아가는 전사회적 총유출의 벡터(vector)는 변함없이 고구려를 민족의 심장이자 그 심장의 맥박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야심가들,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추종자들은 바로 이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향후 중화권 중심의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정지 작업일 수 있다. 따라서 이 공정, 이 연구는 궁극적인 신중화제국주의로 귀결할 가능성이 크다.

아하! 위태롭구나!

평화는 또 다시 깨어지는가? 중국의 제국주의, 패권주의가 또 다시 일어나 뭇 생명을 손상하고 파괴하고 욕보이며 굶주려 죽게 할 것인가?

중국의 야심가들은 끝없이 주변 민족에 대한 경계와 병탄 정책을 강화하고 내륙으로부터 해안의 대도시와 공장을 향해 수없이 밀려드는 남루한 모습의 농공조(農工潮), 즉 날품팔이 노동자 문제, 서역 즉 서부 개척 문제, 50여 소수 민족 문제, 천안문 그룹의 압박, 당 간부들의 대부패, 파룬궁(法輪功)의 악몽, 황하 유역의 사막화 등을 밀쳐내기 위한 환상이자 아편으로서 수십 층의 고층 빌딩, 자기부상열차를 졸속으로 건설하듯 그런 정략적 구도에서 고구려에 대한 동북공정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공작 대상이 아니다. 역사는 민중의 내면적 삶의 생성에 대한 경건한 자극이요, 또한 그 생성의 결과다. 그것은 결코 잔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제작이나 공작과 생성이나 생명은 전혀 반대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니 이는 참으로 전인류에게 퇴행을 강요하는 반생명적, 반민중적 대사건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 고구려를, 동북공정 속에서 지금 난도질 당하고 있는 그 고구려라는 이름의 우리 민족 역사의 심장박동을 살려내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동북공정에 대해 준엄하게 심판 부정하는 까닭은 또한 무엇일까?

우선 우리들 과거의 역사 속의 얼룩인 일제의 이른바 '반도사관'을 이 기회에 늠름하게 극복해 광활한 대륙과 해양에서 공히 활동했던 민족 본연의 장엄한 해륙(海陸)사관을 드높이 세우는 일이다.

둘째로 민족 정체의식을 똑바로 세우기 위한 절체절명의 의미망이요 기초가 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은 위기에 부딪칠 때마다 천손(天孫)의식을 바탕으로 살아 도리어 집단적 자의식을 강화하였으니 다물(多勿·상고대의 평화 회복)을 국시로 한 고구려는 그 중에서도 한 알짬이었다.

셋째로 우리의 역사는 매우 선진적이요(중국학자 라오간의 말), 다양한 방면으로 탁월한 활동을 펼쳐 보였으니, 라오간(勞幹)에 의하면 일찍이 사람 '인(人)'의 철학과 인자할 '인(仁)'의 윤리가 중국에 전해졌다. 고구려는 바로 그것을 대표한다. 고분벽화, 산성건축양식에서 이미 볼 수 있듯 문화가 뛰어났으니 일찍이 음양오행, 삼극사상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드러났으며 천문(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조선 초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고구려 천문도를 베낀 것이다)이 발달하여 드높고 드넓으며 가없는 우주론이 창조되었다. 특히 동아시아의 모든 문화가 모여드는 용광로이며 온갖 문화의 일대 해방구였다.

넷째로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정통성의 근거다. 그 시대인들에게는 자기들이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인식이 드높았으며 또 그 고조선의 웅숭깊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통일된 탁월한 고대 정치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이러한 고구려 인식에 의해 이제부터 대륙과 해양, 유럽과 아시아, 농경 정착과 유목 이동, 주체와 타자,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 영성·지성과 감성의 결합, 리비도와 아우라의 이중적 교호 결합의 새 문명을 지향하고 이 새 문명의 창조 과정에서 통일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

2004년에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회의가 열린다.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만을 제시했으나 중국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안(集安)과 환런(桓仁)의 유물, 유적 전체를 제시했다.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서 북한이 진다면 전세계적으로 고구려 역사는 중국의 역사로 공인돼 버리고 만다. 어찌할 것인가?

알심 있는 민족자본으로 평가 받은 쌍용의 일부가 중국에 팔려나가고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이 속속 돌아온다. 중국인들의 그물망에 빠진 한국 기업이 이윤의 본국 송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어찌 해야 하는가?

흥분 역시 무관심과 똑 같은 대응 실패다. 억지 역사를 주장하는 것도 촌스럽다. 오직 진지한 학문적 연구와 지성적 대응이 필요할 뿐이다. 일제가 만든 반도사관을 극복하고 중국인들이 기술한 사료 위주의 역사 해석에서 바로 지금 탈피해야 한다. 다양한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여기에 민족신화, 자연과학 등등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

동북공정과의 대결은 아마도 사관(史觀)의 대결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의 민족, 아시아 전통문화의 현대적 해석학은 '역(易)'에 기초할 것 같다. 역이라면 중국의 주역(周易)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공부하고 참고해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긴요한 것은 오늘의 인류역(人類易)인 정역(正易), 즉 한국땅 논산의 김일부(金一夫) 선생의 세계역(世界易) 미래역(未來易) 우주역(宇宙易)인 것이다. 중국의 주역은 2,800여 년 전의 중국의 민족역(民族易)이요, 봉건적 가부장적 고역(古易)이다. 참고는 해야 하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김일부 선생의 새로운 역이다. 유불선(儒佛仙)에 대한 르네상스의 기초해석학으로 주역을 참고하되 동학과 간역(艮易·정역의 다른 이름)과 새로운 과학의 통합적 지혜에 의해 이것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주역이 그렇다. 그러나 갑골학이나 고증학이나 금석학, 고고학 등에 의해 이제까지 거의 신화로만 치부된 역의 첫 샘물과 또 그 주역을 넘어 현대에 간방(艮方·동북방)에서 일어난 신세계 역의 출발이 모두 이 땅 우리 민족의 지혜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에 도(道)가 퍼지지 않자 공자는 뗏목을 타고 이 땅으로 오고자 했을 만큼 이 땅은 문화가 융성한 나라였으니 공자 자신이 주역 말미에 붙인 역 철학인 계사전(繫辭傳)에 이미 우주와 역사의 대변혁인 개벽과 함께 동학과 정역을 비롯한 새로운 동아시아 문화가 이 개벽시대에 와서 찬란하게 출현하리라고 명백히 예언했다. 왈, '만물이 끝나고 만물이 시작함에 있어 간방보다 더 그 변화가 왕성한 곳이 없다(終萬物 始萬物 莫盛乎艮).' 간방은 곧 한국인 것이다.

아, 고구려!

김지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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