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 해 세계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했다. 그가 올 국제정세를 지배했던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선제공격 전략'에 입각, 전례 없는 일방주의를 구사했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그는 세계 정세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사담 후세인 생포 등 일방주의에 입각한 부시의 밀어붙이기 세계전략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미국 내에서 곤두박질하던 부시의 지지도는 반전하고 있다.
하지만 적이 공격하기 전 적을 찾아 분쇄한다는 선제공격 전략은 세계평화의 기초를 허무는 것이었다. 2001년 9·11 테러 후 테러범을 제거하기 위해 채택된 이 원칙이 국민국가(이라크)에도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세계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선제공격으로 58년간 불완전하게나마 유지됐던 세계평화가 근본적으로 도전받게 됐다"고 말했다. 침공을 당하거나 침략을 당할 처지에 있을 때에만 자위권 차원에서 용인됐던 유엔의 전쟁 원칙이 위협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호기로운 부시 독트린
부시 대통령은 1월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위험은 WMD를 추구하는 무법 정권들이며 미국은 힘을 사용하는 데 있어 명예롭게 행동하겠다"며 새해 벽두 세계를 긴장시켰다. 지난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 국가로 규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수순은 주저 없이 진행됐다. 미국은 전 해 통과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 이라크 결의안이 전쟁 명분을 충족시키지 못하자 추가 결의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사찰 연장을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했고, 이에 부시는 후세인에게 이라크를 떠나라는 최후 통첩을 보낸 직후인 3월20일 30만 명의 미·영 연합군에 진격을 명령했다. 열흘이 채 안돼 미군은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고, 바그다드 시내 후세인 동상이 성조기로 싸여진 채 무너지는 극적인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부시의 독트린은 테러 지원국과 WMD 보유국에 대한 저돌적인 대치 또는 공격 국제사회 공인 없이도 행동할 수 있는 권리 확보 독재정권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 등으로 정리됐다. 이제 부시의 미국은 '한다면 하는'세상을 만든 듯 했다.
승리를 맛 본 부시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발표, WMD 선적 선박 나포 방침을 밝혔고 독재정권 붕괴를 겨냥한 소형 핵무기 개발 방침도 확정했다. 중동 질서 재편과 관련해서는 시리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하면서 위협을 가하는 한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설득해 단계적 중동 평화안을 마련, 골치거리를 줄이기도 했다.
일방주의에 대한 반발
세계는 이라크 전쟁을 석유자원 확보와 중동 질서 재편이라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가장 강압적인 전략이라고 비난했다.
우선 이라크 국민이 미국을 환영하지 않았다. 5월 1일 부시 대통령이 전투기를 몰고 항모 에이브러험 링컨호에 내리는 '탑건쇼'를 펼치며 "전투는 끝났다"고 선언하자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개시됐다. 이후 이라크 저항세력의 총탄에 미군들이 매일 쓰러져갔다. 올 여름 들어서는 전쟁 중 사망 군인보다 전후 사망자가 더 많아 졌고 미국은 이라크 주권의 조기 이양쪽으로 후퇴했다.
세계인들은 전쟁의 불법성을 지적하면서 등을 돌렸다. 부시 대통령은 승전 직후 "이제 이라크에서 WMD를 찾아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지만 지금까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또 "후세인 정권과 9·11테러는 직접적인 연계가 없다"고 물러서야 했다. 결국 명분은 전쟁 후에라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급기야 세계는 평화를 해치는 당사자로 부시 대통령을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BBC방송과 퓨 리서치 센터 등이 발표한 세계 각국 여론조사를 보면 세계인들은 후세인 보다 부시 대통령을 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했고 미국을 우방으로 여기는 세계인도 절반밖에 되지 않다. 유럽과 미국의 갈등이 2차 대전 이후 가장 증폭되는 가운데 미국은 점점 고립돼 가는 듯했다.
미국은 더 안전해졌는가
부시의 선제공격전략은 테러 조직과 이를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 응징해야만 세계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종교적 신념 등으로 무장된 테러범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 방법론은 상당히 현실적일 수 있다. 그래서 상당수 미국인들이 부시를 지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 전략을 통해 최근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WMD 포기 선언, 이란의 핵 사찰 수용 등 일정 성과도 거두었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얽힌 모든 현안을 대테러 전쟁이라는 1차 방정식으로 환원시키려는 부시의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미 민주당 대선주자 하워드 딘은 "부시 대통령으로 인해 미국과 세계는 더 안전해졌는가"라고 묻는다. 천문학적인 전비를 들여 미국이 얻은 것은 고작 후세인뿐이며 테러 위협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북한 등 '불량국가'들의 도전과 알 카에다 등 테러조직의 준동은 전혀 감소되지 않았다. 테러범들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지에서 미국과 미국의 우방을 대상으로 잇따라 자폭 테러를 벌여 세계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미국을 이어 선제 핵 공격 전략을 채택, 세계를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올 한해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일방주의가 횡행하는 외교 부재 상황을 줄곧 비판했다. 내년에도 부시 대통령이 이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계는 올해 만큼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부시 말 말 말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3월20일 이라크 전쟁 개시를 위한 회의를 끝내면서 )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악이 끝나고 있으며 잔인한 정권이 최후를 맞고 있다." (4월3일 이라크전 미군 전사자를 위로하며)
"이라크전 비판론자는 수정주의 역사가이다." (6월16일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최선의 방책은 적이 공격하기 전에 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6월30일 본토 수호 결의를 강조하며)
"덤벼 봐." (7월6일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며)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7월25일 워싱턴의 한국참전기념비 앞에서)
"테러범은 문명사회의 적." (8월19일 이라크 주재 유엔 사무소 자폭테러 상황을 보고 받고)
"김정일은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실패한 지도자." (10월22일 아시아 순방 중)
"하나의 매혹적인 순간이었다."(12월17일 후세인 생포 직후 기자회견에서)
■부시의 눈물… "정치" 혹은 "진실"
올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눈물을 두 번 보였다.
두 번 모두 이라크전 상황이 나빠졌을 때 미군 장병들 앞에서 흘린 눈물이다. 올 들어 첫번째 눈물을 보인 것은 이라크전을 시작한 지 2주 만인 4월3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해병부대에서 열린 전사자 추모식에서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들은 해병이 되길 원했으며 조국을 사랑했다.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라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11월27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바그다드를 깜짝 방문했을 때도 그는 눈물을 보였다. 장병 600여 명의 열렬한 환영에 감격한 부시의 두 뺨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시가 살짝 울먹이며 "같이 따뜻한 밥을 먹으러 왔다"고 하자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부시의 눈물이 100% 연기는 아닐지라도 온전히 자연스런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워싱턴에선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눈물의 극적효과를 가장 잘 이용하는 부시를 두고 '눈물의 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9·11 테러 이후 연설 때마다 흘린 부시의 눈물이 그의 지지도를 급상승키시고 대테러전 및 선제공격론에 대한 찬성여론을 조성한 1등 공신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스티브 준스 교수는 "올해 부시의 눈물은 세계평화를 위해 젊은 생명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인간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전쟁을 시작한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방어적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2004년 대선을 염두에 둔 '선거용 눈물'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부시의 말투는 여전히 점잖지 못하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후세인이) 죽은 채로든 산 채로든 잡히기만 바란다"와 저항세력에 대한 "덤벼 봐" 등의 자극적인 표현은 부시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에게는 솔깃했을지 몰라도 반미감정을 자극하는 등 외교적으로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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