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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가난한 이들의 컴퓨터 재활용기업 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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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가난한 이들의 컴퓨터 재활용기업 컴윈

입력
2003.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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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컴퓨터는 170만대 정도. 새로운 기종이 나오는 기간이 짧아지면서 그만큼 버려지는 양은 많아지고 속도는 빨라진다. 그런데 이 폐기물은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하다. 외피인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으로, 철은 철로 재사용할 수 있으며 여기서 금도 나온다. 아직 쓸 만한 것은 판매나 수출도 가능하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시화공단에 자리잡은 컴윈은 버려진 컴퓨터를 모아서 재활용을 돕는 업체이다. 첨단시대의 '신(新)넝마주이' 기업이라 할 컴퓨터 재활용 업체는 국내에 20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컴윈은 이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의 자활기업이라는 점에서 다른 기업들과는 다르다."컴퓨터를 재활용하는 일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자활수급자들이 모여 기업을 만들었습니다"고 컴윈 대표 박성진(34·경기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씨는 말한다.자활수급자란 최저 생계비 이하의 수입을 가진 실업자들로서 자활을 돕는 사회복지기관(자활후견기관)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하고 최저생계비 수준의 생활비를 직접 벌거나 지원받는 이들을 일컫는다. 최저생계비를 초과하지만 역시 저소득층인 이들은 차상위로 불리며 역시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컴윈은 아직 기업은 아니다. 내년부터 기업이 된다. 일을 시작한 것은 올 1월부터였지만 자활후견기관의 도움을 받아왔고 그간의 성과에 자신감을 얻어 조합형 기업으로 정식 출범한다. 이를 위해 같이 일하던 사람 11명 가운데 9명이 조합 출범에 동의해 출자금까지 냈다.

"잘할까 불안하지요. 하지만 지금처럼만 하면 지금보다는 돈을 더 가져갈 수 있다니까 한번 내 사업으로 해보려고요." 조합원 중 한 명인 염영숙(51·경기 시흥시 신천동)씨의 말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손에서 일이 떠나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들 하나는 군에 가고 딸 하나는 직장에 다니지만 "수족을 움직여야 살 수 있다"는 그는 4월에 컴윈에 합류했다. 몸이 아프던 남편은 7월에 세상을 떠났다. 염씨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컴퓨터 해체. 컴퓨터 재활용 업체의 일은 컴퓨터 수거와 해체, 조립 및 판매 과정으로 나뉘는데 아무래도 힘쓰는 수거는 남자들이 주로 맡고 해체는 여자들이 맡는다.

컴윈은 시화공단에 본사가 있고 대구와 대전에 지사가 있다. 조합원 11명 가운데 5명이 본사 조합원이고 나머지 4명은 2명씩 대구와 대전에 흩어져 있다.

컴윈의 조합원은 굳이 나누자면 가난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이들로 나뉜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이들은 자활후견기관 및 사회운동단체에서 파견된 사람들로 6월말까지만 해도 2명이었다. 대표인 박성진씨도 바로 그 중 한 명이었으나 7월부터 자활수급자로 변신했다. "그거 굳이 따진다면 연봉 500만원 정도가 주는 것인데, 큰 차이가 없어요. 내년에는 우리 사업을 해서 그보다 훨씬 많이 벌 수 있는데요"하고 박씨는 그를 특별대접하는 걸 거북해 한다.

박씨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2년 동안 중소기업에서 타워크레인 리스 할부 임대 등의 영업을 했지만 사회운동이 하고 싶어서 안산의 실업극복국민재단에 들어간 것이 2001년. 자활훈련기관에 파견되어 실업자들의 생계비 지원을 위한 상담업무를 맡았다. 컴윈의 사업도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실업극복국민재단은 실업자들의 자활을 위해 전국에 60개 사업조직을 만들어 컴퓨터를 수집하고 재활용하는 일을 시작했다. 박씨는 바로 이 전국단체의 대표로서 컴퓨터 재활용 사업의 기틀을 다지면서 자활후견기관의 상근자 일도 병행해야 했다. 그런데 재활용 업무가 많아지다보니 자활후견기관의 상근자 일을 하기가 힘들었다. 자활후견기관에서 두 가지 역할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하자 그는 상근자 일을 그만 두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현재 그의 지위는 차상위자. 세 식구의 가장으로 그는 한 달에 80만원 정도를 벌고 있다. 그는 "컴윈을 저소득층의 자활기업으로 만들려면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물론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박씨의 직함이 대표라지만 일터에서는 그냥 '성진'이다. 나이가 가장 어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터의 분위기는 가족적이다. 그가 하는 일은 컴퓨터 수집에서 해체는 물론 홈페이지 관리나 홍보물 작성 등 모든 잡무가 다 해당된다.

컴윈의 사시(社是)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 살맛나는 환경사회 실현'이다. 컴퓨터는 통째로 다시 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체 후 부문별로 재활용된다. 가령 모니터는 브라운관과 구리, 기판(플라스틱) 등으로 나뉘어 재활용되며 본체는 통판(고철) 기판(파분쇄후 제련소) CD롬(수출 또는 재조립) 하드(40기가 이상이어야 재활용) CPU(수출 또는 중간처리업자가 받아 파분쇄후 금 추출) 등으로 나뉘어 처리된다.

문제는 통째로 쓸 수 없는 불량품까지 그대로 수출되는 데 있다.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기판의 금속이나 CPU의 금을 얻기 위해 불량품을 통째로 수입한 후 필요한 부분만 빼내고는 쓸모없는 것은 그냥 매립하는 현상이 빚어진다. 쓸모있는 것을 빼내는 과정에서 공해와 독성물질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령 CPU는 파쇄, 분쇄 과정을 거친 후 제련소에서 금 성분을 빼내야 하는데 노상에서 태워 금만 얻다 보니 그 과정에서 다이옥신이 배출되며, 기판도 노상에서 태워서 금속을 빼내며 납성분이 노출된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시절에 겪은 폐기물 수입사업이 다른 저개발 국가에서 재연되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이 같은 일을 단속할 만큼의 정부 인력은 없어서 무방비로 일어나고 있다. 이에 컴윈은 이 같은 일을 하지 않는 데서 나아가 정부가 적극 나서서 컴퓨터 재활용의 환경규제 조항을 만들고 적극 실천하라고 제시할 계획이다.

컴윈은 버려지는 컴퓨터 가운데 쓸모있는 부품을 재조립해서 무료기증하는 일도 하고 있다. 올해만도 600대를 가난한 청소년에게 기증했다.

조합원 신안기(48·경기 안산시 부곡동)씨는 컴퓨터 조립 전문가이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통신공사 공채 직원으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89년 사촌 매형의 청으로 건설자재 총판사업에 동참하며 직장생활을 접었을 때만 해도 어려운 줄을 몰랐다. 그러나 90년대 건설경기가 죽으며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96년부터 친구와 동업한 PC 대리점은 IMF의 직격탄을 맞아 2000년에는 접어야 했다. 그에게는 유선통신 기계 설비기사, 유선통신 선로 설비 기사 등 각종 자격증이 있었지만 취업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올 초 자활수급자로서 컴윈에 합류했다. 조립 전문가라지만 트럭을 몰고 나가 컴퓨터를 수거해오는 일도 그의 일이다. 중·고등학교에서 버리는 컴퓨터를 가져오다보면 2층은 다행이고 3, 4층에서 일일이 계단으로 들고 나를 때도 많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가래톳이 나서 혼났다"는 그는 "그래도 조립 컴퓨터를 받으려고 (저소득층의) 온 식구가 골목까지 나와있던 모습을 생각하면 내가 참 좋은 일을 하는구나 싶다"고 말한다.

방수일(37·경기 안산시 단원구 와동)씨는 또다른 조립 전문가이다. 인문계 고교를 졸업한 그는 일찍 결혼해서 벌써 애가 넷이다. 그는 용산전자상가 직원에서 트럭노점상, 막노동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 98년 공공근로로 시작해 사회복지시스템이 바뀌면서 2000년부터 자활수급자로 살아온 그는 컴윈의 일이 "정말 하고 싶던 컴퓨터 일이라서 즐겁다"고 말한다.

박세훈(35·경기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씨는 자활후견기관의 현장관리자 자격으로 조합에 동참했다. 그 역시 고등학교만 나오고 사회단체에서 쭉 일을 해왔다.

컴윈이 올 한해 동안 수거해서 재활용한 컴퓨터는 1만2,000대 남짓. 이 가운데 3,000대 정도가 재활용 수익으로 불우청소년에게 재조립 컴퓨터를 보급하는 일에 쓰여져서 실제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자활후견기관 출신이나 자활수급자나 이 회사의 조합원 가운데 윤나게 잘 사는 사람은 없다.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만져봤던 신씨조차 어린 시절은 친척집에 얹혀 살 만큼 가난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기업을 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일자리를 갖게 하고 불우한 청소년에게 더 많은 컴퓨터를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이 잘 살게 되는 것만 해도 멋지지 않느냐. 업무의 4분의 1이 불우이웃돕기라는 것은 과하다"고 반박하자 그들은 모두 웃기만 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사회적 일자리

컴윈처럼 저소득층이 모여 공익적인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자활사업을 '사회적 일자리'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사회의 소외계층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창안해낸 '사회적 유용성을 갖는 일자리(Emplois Sociaux)'를 한국말로 옮긴 것으로 개념 역시 그 곳에서 따왔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구제금융 여파로 실직자들이 크게 늘어나자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 완충 개념이 나오는 가운데 시작되어 2000년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이들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인 사회적 일자리는 자활영림단 사업. 생명의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 주도로 간벌사업을 하는 이들이 소규모 동아리를 만들어 임금을 벌어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 '늘푸른사람들'은 청소 전문 용역업체로 가장 성공한 사회적 일자리 기업에 속한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중년층을 주로 고용하며 청소업체 가운데서는 가장 고임금을 주는 업체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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