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서울 광진구 화양동 화양지구 구획정리 사업 공사 중 이상한 토기조각이 발견되었다. 뒤 이은 조사팀의 발굴에서 특이한 형태의 토기, 온돌 유구와 석축, 화살촉 창촉 등 많은 무기류가 쏟아져 나왔다. 집안(集安)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나팔처럼 주둥이가 넓은 이 항아리는 분명 고구려 것이지만, 백제 땅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렇다고 백제 것으로 볼 수도 없는 이 유물들은 뒷날 화양동 뒷산인 아차산과 용마산 능선에서 발견된 독특한 보루성(堡壘城) 유구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고구려 것으로 보지 못하였다. 고구려사 연구의 황무지 시대였다.■ 1998년 9월 아차산에서 고구려 병사들이 쓰던 복발(覆鉢)이 출토되었다. 사발모양의 고구려 투구 윗부분이 발견된 데 이어, 부근 헬기장에서 고구려 토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우연한 산불로 드러난 석축 유구는 전형적인 고구려 산성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 박물관 등의 본격 발굴작업을 통해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수락산 등 인근 산봉우리와 능선에서 16개의 고구려 보루성이 발견되었다. 등산을 가면서 무심히 밟고 다닌 돌들이 고구려 병사들의 막사나 초소, 또는 방어 거점이었다.
■ 보루성은 본격적인 성과 달리 중대나 소대급 부대가 주둔하며 군사활동을 하던 거점이다. 지름이 40m가 넘는 것부터 분대 단위 규모의 진지도 확인되었고, 평시에는 농사 짓는 데 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농기구류도 나왔다. 이런 시설을 거점으로 강 건너 한성백제의 심장부를 노리던 고구려는 475년 장수왕이 이끄는 3만5,000 병력으로 백제의 왕도를 유린한다. 이 싸움에서 백제는 개로왕이 고구려 군에 붙잡혀 죽는 치욕을 당하고 웅진(공주)으로 천도한다. 그 때부터 한강 유역은 고구려 영토가 된다.
■ 고구려 유적은 임진강 유역과 경기도 양주 땅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충주지방에서 발견된 중원고구려비는 고구려 세력이 신라 영토에까지 미쳤음을 증거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아차산성 일대 고구려 보루성들을 사적지로 지정키로 했다. 전문적인 학술조사를 거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한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지방정권으로 종속 시키려는 기도를 의식한 조치다. 그런데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가 된다면 우리의 입지는 어떻게 되나. 우리의 역사공간은 겨우 한강 이남의 영역으로 축소되고 마는가. 중국의 음모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실감이 난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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