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요, 우리 매니지먼트사에서 일 없는 사람이 (장)혁이랑 저였거든요. 혁이는 빨래하고, 저는 설거지하고, 우리는 왜 일이 없을까 회사에 미안해 하면서 이젠 기억도 안 나는 수 많은 오디션에 참가하고 그랬지요. 돈이 없어서 술 마시고 싶으면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 사서 뚜껑에 따라 마시구…."'몽정기' '위대한 유산'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등 영화 속 그녀의 이미지는 언제나 밝고 경쾌하지만, 김선아 그녀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물론 장혁에게도 이런 과거가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뒤집어 보면 두 사람이 무리 없이 배역을 소화하는 동시에 "참 괜찮은 친구"란 평을 듣는 것도 이런 시절이 여전히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바의 노래처럼 '모두 승자의 몫'(The Winner Takes It All)인 것이 이 바닥 생리다.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올드보이'의 최민식의 연기는 그들보다 먼저 현장에 나왔고, 그들보다 늦게 집에 들어간 헤아릴 수 없는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각광을 받는 것은 역시 스타다. 이름 모를 그들의 공적은 엔딩 크레딧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뿐(예전엔 이것도 아까워 이름을 못 올리는 스태프가 부지기수였다)이고, 그들은 어느 시상식장에도 초대 받은 적이 없다.
스태프들이야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포기, 혹은 거부한 사람들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올해 나름대로 열연이라고 생각했으나 눈길을 끌지 못해 섭섭한 조연은 무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빛나지 않는다고,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람난 가족'의 제작자 심재명씨는 "'여성이 돋보이는 영화라서 남자 배우들이 조명을 받지 못했다. '감초' 역할이 아니라 연륜이 빛나는 캐릭터를 선보인 김인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우편배달부를 연기한 성지루의 연기가 고맙다"고 했다.
이들은 오히려 축복 받은 축에 든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은장도' '남남북녀'처럼 '올해 최악'의 영화에서 수위를 다투던 영화를 작업한 사람들은 노고와 무관하게 수고했다는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연말이다. 주연이고 싶었지만 늘 조연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조연도 감지덕지인 단역 배우,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의 공백을 자부심으로 때우는 스태프들…. 우리 모두 이렇게 생각하자. 사람에게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그래서 새해 명절 무렵엔 목욕을 하는 것일까?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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