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거 있으면 입에 넣어줄 것 같은 남자. 정의감도 있어 보이고 귀엽기도 하지만, 조금 겁쟁이일 것 같은 남자. 체크 무늬 셔츠를 입은 국어 선생님 같은 남자. 그런 이미지 아닐까요." 정준호는 "준호야, 사랑에는 돈이 든단다" 같은 대사가 나오는 CF를 예로 들어 '보여진' 이미지를 밝혔다.하지만 정작 그가 꿈꾸는 영화나 배역은 이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술을 배웠다"는 그는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랐다. 이를테면 손해를 좀 보더라도 지인을 도와야 할 때는 나서야 하고, 작은 이익보다는 큰 꿈을 좇아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한마디로 폼생폼사죠."
이런 그의 인생관은 그에게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첫째, 인연에 끌려 영화를 선택한 경우도 적잖아 그의 필모그래피는 초라하다. 1995년 MBC 드라마 '동기간'으로 데뷔한 후, 영화 데뷔작은 97년 '일팔일팔'. '싸이렌' '흑수선' '하얀방' '천년호'는 그의 이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였다. 하지만 별로 조바심을 내지는 않는다. "영화란 인생과 같아서 실패할 때도, 성공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개 같은 인생'이라고 부르는 20대 초반의 방황에서 그는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법을 배웠다.
둘째 그는 배우 이상의 꿈을 꾼다. "나중에 복지재단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고향이 충남 예산인데 이렇게 저렇게 모으다 보니 해마다 한 2,000명씩 모이는 큰 행사가 열리게 됐어요. 그렇게 되니까 언제 국회의원 나가느냐 하는 말도 많이 듣죠." 이런 저런 사업도 많이 벌이고, 자선단체 행사도 많이 갖다 보니 정계 진출 야망을 추측하는 사람도 많고, 그도 굳이 '야망'을 숨기지 않는다.
'아나키스트' '천년호' 같은 장중한 남성 이미지를 사랑하는 그가 배우로서 성공한 영화는 전혀 방향이 다른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같은 코미디 영화. 코미디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지한 자신의 모습을 코미디 속에 그대로 가지고 들어감으로써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까불거리는 림동해(공형진)와 원칙을 중시하는 최백두가 빚어내는 코미디는 아슬아슬한 선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안진우 감독, 공형진씨가 모두 70년생으로 동갑인데, 서로 의견 조율이 너무 잘됐다"는 설명. 연기 욕심이 많은 공형진이 나서면, 정준호가 뒤로 빠져 패스와 리시브의 묘미를 살렸다. "가끔 자기가 너무 튀려고 남의 연기를 안 받아 주는 이기적인 연기자를 보면 싫어요. 365일 생일 파티의 주인공일 수 없듯 연기도 늘 자기만 튀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죠."
고교 때 '대학생 누나와 반말하며 사귀고', '개처럼 방황하던 20대'를 보내며 일찍 세상을 알아 버렸다는 정준호. 그래서인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조바심하지 않는 성격이 됐다고. 이런 '젠틀한 마초'라면 많아도 될 것 같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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