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는 장렬하다. 벚꽃 지는 장면과 최후의 사무라이들이 고꾸라지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교차시킨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휑하게 쓸고 지나간다. 남성적 가치인 의리를 이토록 낭만적 시선으로 잡아낸 영화는 찾아보기 어려울 듯히다.진짜 사나이에 바치는 헌사
'라스트 사무라이'는 근대화의 격랑에 맞서 칼 한 자루로 시대를 거스르려고 했던 사무라이의 이야기다. 때는 1876년.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대위는 남북 전쟁이 끝난 후 세상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고 허탈해 한다. 그는 친구가 '사나이의 일'을제안한 덕에 얼떨결에 일본 군대 교관으로 부임한다. 근대식 군대를 지향하는 황실과 전통적 가치를 숭상하는 사무라이의 갈등 속에서 알그렌은 자신이 사무라이의 세계에 매료돼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사무라이 부대와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그는 사무라이 지도자 가쓰모토(와타나베 겐)를 만나면서 마지막 사무라이의 길에 동참한다.
물론 19세기적 인간의 위엄과 20세기적 실리의 싸움은 당연히 실리주의의 승리로 끝난다. 가쓰모토와 알그렌은 시대착오적 인물이다. 칼은 총에, 사무라이는 군대에 자리를 내주는 변화의 시기에 이들 두 사나이는 사무라이의 명예와 의리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다. 감독 에드워드 즈윅은 자신의 남성적 가치에 한 치의 의심도 던진 적이 없던 19세기의 인간을 향해 동경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고지식한 남자들의 최후에 지나지 않겠지만 비장감이 짙은 화면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153분을 이끄는 톰 크루즈의 열정
그 힘의 절반은 톰 크루즈(41)에게서 나온다. 러닝타임 153분을 끌고 나가는 그의 힘은 비슷한 연배의 라이벌 러셀 크로(39)와 비교했을 때 더욱 정열적이고 뜨겁게 느껴진다. 사무라이의 정신과 무예에 조금씩 매혹을 느끼다가 결국 모든 것을 바쳐 앞뒤 가리지 않고 몰입해 가는 과정이 매우 설득력 있다. 체중을 12㎏ 늘리고 8개월 간 격투기와 검도를 익힌 톰 크루즈의 액션도 자연스럽다. 사나이의 위엄이란 무엇인가를 유감 없이 보여주는 와타나베 겐도 기품 있는 연기로 톰 크루즈와 빼어난 앙상블을 이룬다. 뛰어난 미·일 배우의 불행한 결합을 낳은 '블랙레인'을 떠올려보면 '라스트 사무라이'는 아시아 남성에 대한 편견을 부술 정도로 공정한 편이다. 17세 때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에 반한 뒤 일본 역사책을 탐독했다는 즈윅 감독은 일본 문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이해를 보여준다. 인력거와 기관총이 함께 등장한 혼란스런 메이지 유신 시대의 풍경도 튀지 않는다.
호쾌함과 장중함 어울린 전투
조금은 지루하다 싶은 '라스트 사무라이'는 마지막 10분 간의 전투로 이전의 사소한 부덕을 모두 덮는다. 사무라이 군대와 제국 군대가 대치한 일명 '최후의 전투'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 첫 전투 장면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정도다. 기관총 세례를 받으면서도 말고삐를 늦추지 않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사무라이의 눈빛은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후의 전투가 주는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나오는 일본 황제의 영어 연설이나, 알그렌이 자신이 죽인 사무라이의 아내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설정 등이 좀 어색하지만 어설픈 동양철학을 내세우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일본과 뉴질랜드에서 촬영했으며 뉴질랜드의 뉴플리머스에 일본의 1870년대 마을을 건설해 찍었다. 2004년 1월9일 개봉.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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