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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고운 해야 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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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고운 해야 솟아라

입력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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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덧없는 눈물이, 하염없는 눈물이/ 헤아릴 길 없는 절망의 심연에서/ 가슴으로 치밀어 두 눈에 고이누나."'말잔치'에 현혹되어 우왕좌왕하며 좌충우돌하고 지리멸렬하면서 부질없이 흘려보낸 우리의 2003년을 되돌아보노라니 문득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구(詩句)가 뇌리를 스친다. 속절없는 눈물이 눈시울을 적시지만,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진화하는 걸까.

자연생태계 역사가 유전정보의 진화과정이라면 인류 역사는 지식정보의 진화과정이다. 자연생태계엔 지도자가 없다. 물론 대통령도 없다. 도덕이나 윤리를 앞세우지도 않는다. 무슨 혁명을 열망하면서 '우리'와 '그들'을 편 가르지도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들의 경쟁이 처절할 뿐이지만,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보이지 않는 손'(자생적 질서)에 의해 다양화되고 공존한다. 자연생태계든 인류든 간에 궁극적 목표는 종의 보존과 진화다. 개미가 허리 휘도록 일하고 베짱이가 목 쉬도록 우는 게 모두 먼 미래를 향한 몸부림이 아니던가.

인류는 지식정보의 진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염원한다. 하지만 사상, 주의, 권력 따위의 모든 예속에서 벗어나 생각이 넉넉해져야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을 역사는 입증한다. 예속의 닫힌 사회에서 벗어나 공존의 열린 사회로 나아가 자유사회를 지향해야 비로소 창의력과 지혜가 마음껏 발휘되는 것이다.

세상은 강요된 개혁이나 무슨 혁명을 통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 혁명은 역사의 발전방향을 되돌려놓기 일쑤였다. 자유를 지향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독재를 배태한 것이 시민혁명의 귀결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러시아 혁명이 그랬다. 흔히 '산업혁명'이라고 하지만 이는 혁명이 아니다. 자유방임의 영국 경제 풍토에서 자생적으로 성취된 기술 개선과 혁신의 집합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대사는 무엇을 기록하고 있나. 한도 끝도 없는 '개혁'의 기치 아래 강요된 인위적 질서 속에서 귀중한 정신을 소모해 온 것이 우리의 가난한 현대사가 아닌가. 열렬한 갈채를 받으며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한 분도 없었지만, 일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애걸하고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우왕좌왕하지 않았나. 누군가의 말대로 이제부턴 '개의치 말자!'

또 한 해가 밝는다. "해야 솟아라…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그리하여 우리의 젖은 눈망울들이 자유의 광채로 빛나게 하라.

조 영 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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